갓바위에서 실패를 감으니 대마도가 딸려 왔다

김수형

25-03-16 20:37

| 시인의 산문 |

 

 

바위에서 실패를 감으니 대마도가 딸려 왔다

 

김수형

 

1. 인수분해(人獸憤害)

 

 

내가 ‘셀룰스게임리저브’ 동물보호구역에 들어왔을 때 늑대와 여우 한 마리를 만났다. 그들은 참 친해 보였다. 초식동물인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들의 인사는 초식동물인 나에겐 두려운 폭력이었다. 

 

아프리카 대초원의 노을은 세 번 진다. 해 뜰 때 한 번 지고, 해 지기 전에 한 번 지고, 해가 지고 나서 한 번 진다. 나는 그 초원에 지는 해를 시에 담아서 문학상을 하나 받았다. 나는 아프리카의 나무 위에 올랐고, 늑대와 여우는 그 나무 밑에 와서 나를 흔들었다. 셀룰스보호구역에 들어왔을 때 초식동물인 나에게 보였던 그들의 웃음의 폭력은 내가 나무에서 떨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여우와 늑대는 날마다 지는 노을이 표절이라고 하였다. 그제 지는 해와 어제 지는 해와 오늘 진 해가 같다고 내가 노을을 표절했다고 우겼다.


그들은 호랑이가 없는 셀룰스의 동물보호구역에서 가장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나의 시는 왕이 되고 싶은 늑대와 여우의 송곳니에 질질 끌려 다녔다. 그들은 나를 몰고 가서 내 상처에 약을 발라주겠다고 다가왔다. 그들은 내 흉터에 표절이라는 문신을 새기고 뒤에서 깔깔거렸다. 여우와 늑대가 남긴 내 등의 상처는 이미 깊었다. 표절이란 문신을 새긴 초식동물인 나는 그들의 웃음에 억압되었고 그들의 울음소리에 공포감을 느꼈다.


나는 치명적인 그들의 울음을 뒤로 하고 바오밥나무를 찾아갔다. 신전의 기둥들이었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밑둥이와 꼭대기와 둘레가 같은 신이시여! 내가 육식동물이 되게 해주세요. 내가 나의 진실 앞에 포효하는 맹수가 되게 해주세요. 거짓의 주장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는 발톱을 주세요.


기도는 이루어졌다. 내 몸은 맹수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울부짖을 수도 포효할 수도 없는 식물성 맹수였다. 선천적으로 나는 피해자로 태어났나 보다. 날카로운 이빨로 풀을 뜯다가 늑대 무리가 나타나면 숨었다. 나는 맹수의 몸을 벗어버리고 다시 초원을 뜯고 석양을 마시는 초식동물이 되었다. 나의 눈은 석양이 들어와서 붉었다. 피해자로 살기 시작한 내 몸에서 두리안 냄새가 났다. 두리안 껍질은 왜 뾰쪽뾰쪽하게 돋아져 있을까. 달지도 향긋하지도 않은 똥 같은 냄새가 나는 두리안의 냄새는 가시도 없는 한 마리 고슴도치였다.


나는 목이 긴 기린을 만났다. 기린들은 산 너머에 떨어진 해의 숫자를 세어주었다. 그리고 어제 진 석양은 표절이 아니라고 여러 기린들이 말했다. 늑대와 여우는 다시 돌아와 짖을 것이다. 기린들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들이 짖으면 짖을수록 사람의 말이 나올 거야. 여우와 늑대가 말했다. 나는 네가 질투 나. 나는 네가 무조건 싫어. 그래서 표절이 아닌 것도 너는 무조건 표절이야. 심지어 너의 몸까지도. 너의 아빠와 엄마를 닮은 표절이야

 

 

2. 잔치가 끝나고

 

 

바람 끝이 유난스럽던 날이었다. 골목에 들어서자 외할머니가 등불을 들고 서 있었다. 마지막까지 외할머니는 손녀를 위해 어두운 골목길을 밝혀주었다. 홀로 내 걸린 당신의 조등(弔燈)을 보자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나를 덮쳤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나 때문인 거 같았다. 뜨거운 것이 솟구치더니 가슴속에서 무언가 빠져나갔다. 내가 태어났던 자궁과 내가 살았던 고향과 내가 돌아올 수 있는 집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외할머니가 없는 집은 폐허였다. 그 공동엔 외할머니와의 추억만이 큰 집을 짓고 있었다.

 

나는 외할머니의 등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몸이 허약한 나를 외할머니가 업어 키웠다. 광주의 번화가에서 미장원을 하는 엄마는 내가 잠든 뒤에야 들어왔고, 내가 일어나기 전에 나갔다. 엄마의 헤어드라이기는 오랫동안 뜨겁게 돌아갔다. 엄마의 미장원은 늘 만원이었다. 바람처럼 모여든 여자들과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그곳에 내 자리는 없었다.

 

강진 마량의 바닷가 마을이 내 유년의 운동장이었다. 외가에서 자란 나는 바쁜 엄마 대신 외할머니의 빈 젖을 빨았다. 당신의 말라빠진 젖이 나의 식량이었다. 나는 당신의 밥을 먹고 당신 품에서 잠이 들었다. 비위가 약해서 나는 자주 토하고 체했다. 외할머니의 손은 내 등에서 밤새 오르내렸다. 무서운 꿈을 꾸고 깨고 나면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그런 밤마다 외할머니의 등은 나의 요람이 되었다. 칭얼대는 손녀를 업은 외할머니는 내가 잠들 때까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외할머니는 타고난 재담꾼이었다. 당신의 등 위에서 천일야화 같은 신묘한 세상이 매일 밤 펼쳐졌다. 내 몽상의 첫 장을 외할머니가 열어준 것이다. 말하자면 외할머니의 등이 내 시의 시원(詩原)이었다. 이제 따스했던 등은 꺼져버렸다. 다만 당신의 등에 발병했던 종양이 내 가슴을 옥죄여 왔다. 조등의 불빛 속에 인자한 얼굴이 부옇게 번졌다. 당신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외삼촌들이 천막을 치고 있었다. 문상객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내가 온 것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외할머니 방엔 친척들이 가득했다. 당신이 없는 방에 내 마음을 선뜻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부엌으로 갔다. 양은 쟁반에 감자와 숟가락이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외할머니의 숟가락을 가만히 입에 대어 보았다. 당신의 숟가락과 내 숨결이 포개어지면 외할머니가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았다. 숟가락은 차가웠다. 등을 구부리고 앉아 감자를 벗기던 당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외할머니는 감자의 속살을 다치지 않고, 껍질만 얇게 벗겨 내기엔 숟가락이 제격이라 했다. 당신의 숟가락은 앞면보다 볼록한 뒷면이 더 흠집이 많았다. 바닥에 온몸을 스치며 닿아 있는 것들은 허공에 떠 있는 것보다 상처가 훨씬 많은 법이었다.

 

외할머니의 인생이 그러했다. 전쟁 통에 자식을 둘이나 잃었다. 남편이 바깥으로만 돌며 다른 여자와 술독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당신은 남은 자식을 건사했다. 참척(慘慽)의 고통보다 부양해야 할 숟가락의 무게가 더 컸던 셈이다. 외할머니에게 밥은 곧 생명이요, 사랑이었다. 밥상의 둥근 형상 안에 곡선처럼 아름다운 당신의 숨결과 치열했던 생이 들어 있었다. 소매를 걷고 찬찬히 숟가락을 닦고 있는데 큰외숙모가 들어왔다. 상복을 입은 그녀는 나를 보자 밥상을 차렸다. 숟가락을 쥐어주며 어서 밥을 먹으라고 채근했다. 이상한 건 외숙모뿐이 아니었다. 그녀처럼 입이 미어지게 밥을 밀어 넣고 있는 외삼촌들이 보였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빗속에서도 밀려드는 이웃들을 맞느라 외가 식구들은 분주해졌다.

 

외갓집 마당이 잔칫날처럼 출렁거렸다. 큰 난장이 펼쳐진 듯했다. 그곳엔 어떤 별리의 흔적도 없었다. 일부러 멀리 시선을 보냈으나 외할머니를 잃은 슬픔은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안부를 묻고 웃는 사람들도 보였다.

빗소리는 차츰 커져만 갔다. 설움이 복받쳤다. 대상이 분명치 않은 분노가 밀려왔다. 나는 뭐라도 해야만 했다. 밥상을 걷어차고 싶었다.

-밥이 넘어가니, 라며 동생을 노려보고 있던 그때, 작은집 할머니가 도착했다. 생전에 외할머니가 가장 싫어했던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힘껏 방바닥을 내리쳤다. 곧 어깨를 들썩이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고! 아이고! 성님을 외치며 구슬피 울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꺽꺽대며 울었다. 처음엔 그녀의 유별난 통곡이 민망스러웠다. 하지만 이상한 감동이 마음을 들쑤셨다. 외할머니의 죽음이 절절하게 와 닿았다. 평소에 작은집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외삼촌도 그녀를 따라 어느새 울고 있었다. 과장된 호곡으로 우리는 위로를 받고 있었다. 슬픔을 겉으로 드러낼 수 있다면 고통은 견딜 만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아픔, 다시 살 힘을 갖기 위해 마련한 장치가 장례식인 듯했다. 문상객을 맞이하는 동안 상주의 슬픔은 잠시 잊힐 터였다. 어른들의 웃음 뒤에 숨은 비통함을 나는 외할머니의 잔치가 끝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날이 밝자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행렬이 길게 마을을 빠져나갔다. 포클레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을 파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관을 묻기 위해 파 내려간 구덩이는 붉은 시계꽃 모양 같았다. 그 속으로 늦가을 볕이 쏟아져 내렸다. 금잔디가 입혀진 봉긋한 무덤 앞에 서서 나는 ‘외할머니가 꽃이 되길’ 기도했다. 꽃을 좋아한 당신의 집 마당은 한겨울만 빼고는 늘 꽃이 피고 졌다. 엎드려 절을 하고 내려온 산길 한쪽에 하얀 산국 몇 송이가 날 보고 있었다. 머지않아 당신이 있는 저 빈 언덕의 봉분에도 겨울이 쌓이고 다시 난만한 봄이 올 것이다. 소멸과 생성에 대한 순명(順命)의 잔치라는 게 이런 것 아닐까 싶다. 인생의 덧없음과 사람이 어떻게 살다 가야 하는지 알 것도 같다. 지구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고, 그 공동(空洞)에 내 자리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땐 아무렇지도 않게 흥겹게 가고 싶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밤, 검은 빗소리에 흔들거리던 등불이 생각난다. 나를 품었던 당신의 따스한 등이 생각난다. 외할머니는 알았을까? 그것이 우리 동네의 마지막 잔치였다는 것을. 우리 외할머니는 참 복도 많다.

 

 

3. 잃어버린 편지

 

 

내 시의 첫 소절은 첫사랑에게 보낸 첫 마음이자 못다 쓴 원고지의 여백이다. 그 빈칸에 회한의 빗방울이 떨어진다. 사각의 원고지에 내린 어둠과 냄새는 나를 슬프게 한다. 수만 가지 사물의 냄새가 뒤섞여 공기를 파동시키는 그 향내 속에서 나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다. 아직 당도하지 않은 시의 쓸쓸한 골목길을 찾아 헤맨다.

 

첫 마음은 스무 해의 봄에 피어났다. 캠퍼스에 피어난 꽃은 시들기 전까지 완벽했다. 삼월은 봄이라기엔 좀 추웠다. 기대를 품고 찾아간 학교는 학생들의 시위로 문을 연 날보다 공강하는 날이 더 많았다. 새 구두에 뒤꿈치가 까졌는지 발이 불편했다. 잔뜩 웅크리고 걷다가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허접하게 둘러멘 가방이 떨어지며 소지품이 와르르 쏟아졌다.

 

-미안합니다.

조용하지만 그윽하고 맑은 목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고갤 들었다. 진초록 스웨터 속에 푸른 셔츠를 받쳐 입은 그가 서 있었다. 오뚝한 콧날에서 입술까지 이어지는 가냘픈 선이 아름다웠다. 통학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그 모습이 아른거렸다. 달뜨는 마음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릴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던 어느 날, 선배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평소에는 저녁 외출을 꺼리는 나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선배 건너편에 그가 앉아 있었다. 나의 우주와 너의 우주가 서로를 찾는 지극한 마음이 극점에 닿으면 강력한 불꽃이 일어난다더니. 허청거리던 나의 우주에 그가 흘러들어온 첫날이었다. 조도가 낮은 어둑한 카페에서 이제 막 뜬 별처럼 빛나던 그의 눈을 잊을 수 없다. 음악이 깔린 소믈리에의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첫 데이트 때 그는 어깨에 기타를 둘러멘 채였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방파제 둑에 앉아서 ‘긴 머리 소녀’를 불러 주었다.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얀 얼굴~.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이 순간에 그는 오로지 날 위해서만 존재하는 거 같았다. 그는 오직 나란 행성을 위해 돌고 있는 태양이었다. 사랑의 가교가 된 선배 언니는 술에 취해 왁왁거렸지만 나는 그것마저도 좋았다. 첫사랑은 꿈꾸던 모습 그대로였다. 모든 게 완벽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어느 날은 단둘이 만났다. 통 넓은 유리창에 앉은 그는 말이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한번 안아 봐도 될까- 가슴에 확 열꽃이 일었다. 그의 볼도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새침한 얼굴로 그와 헤어져 돌아왔지만 괜히 가슴이 시큰거렸다.

 

구름 위를 붕붕 떠다니던 나날, 선배 언니가 내 환상을 깼다. 자신의 주위에 그를 짝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했다. 그의 잘못이 아닌데도 난 알 수 없는 배신감에 흔들렸다. 내 첫사랑의 복병은 그가 아닌 나였다. 평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에게 문득, 낯선 모습을 발견한 것마냥.

-우린 그만 만날까.

-오빠에게만 지나치게 몰두하려 하는 내가 싫어.

나는 그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알 수 없는 건 내 마음이었다. 이상하게 그를 만나면 아련한 마음보다 뾰족한 말이 앞섰다. 그날 방파제 둑엔 화살 같은 빗방울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우린 아무런 말없이 그 많은 빗줄기를 다 맞으며 걸었다.

-나 내일 섬으로 돌아가.

첫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도회적인 모습과는 달리 그는 섬 마을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그의 아버지는 전근이 잦았다. 그는 조부모와 함께 오지의 섬에서 살았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광주로 전학을 왔지만 적응을 하지 못해 힘들었다고 했다. 그를 휘감던 서늘한 표정 속엔 가족과 오래 떨어져 지낸 결핍이 배어 있었다. 나는 우수에 찬 그의 모습에 더 빠져들었다.

 

잠깐의 이별이었지만 그가 없는 학교는 무척 공허했다. 섬에 도착하면 곧 보내겠다는 그의 편지는 감감했다. 나는 그가 학교로 처음 보냈던 편지를 떠올렸다. 원고지를 빼곡하게 채운 필체가 단정했다. 곱게 접은 종이학, 거꾸로 붙인 우표도 내 마음을 흔들었다. 평소에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그였지만 편지에선 꽤나 다정했다.

-너의 깊은 눈망울과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칼이 좋아.

 

그가 섬으로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갔다. 편지를 기다리면서 나는 무더운 여름방학을 애써 보내고 있었다. 우연히 거리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몰라보게 예뻐져 있었다. 동창은 미팅 장소에 나오기로 한 친구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내 팔을 잡아끌었다. 친구에게 떠밀려 간 곳에서 선배 언니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건너편에 앉은 그와 내 눈이 마주쳤다. 선배 언니와 함께 다정해 보였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답하지 않고 카페를 나왔다.

 

그해 가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여름방학 이후에 나와 그, 선배 언니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한참 후에 그녀가 들려준 소식은 나를 아프게 했다. 나와 연락이 되지않자 그는 내가 있을 만한 곳을 선배 언니와 찾아다녔다고 했다. 자주 어울렸던 그 카페에서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담담한 어조로 털어놓았다. 그를 많이 좋아했다고. 한 번도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며,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음악 카페를 알려주었다. 밖에서 몇 번을 서성거렸다.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신청곡을 뮤직박스에 올려놓고 나왔다. 마스네의 타이스 중 명상곡은 그와 내가 즐겨듣던 노래였다.

 

겨울의 초입 무렵 선배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편입 시험에 합격해서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이었다.

-왜 신희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니? 네게 수없이 많은 편지를 보냈다는데.

머릿속이 멍해졌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그는 편지를 집으로 부쳤던 것이다. 만년필로 정성껏 눌러썼을 다정한 말들과 그만의 필체가 떠올랐다. 아련한 봄날 그가 보냈던 천 통의 편지들은 항상 내 가슴을 뛰게 했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좀처럼 알 수 없던 그의 마음을 다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가 보낸 마지막 편지는 나에게 당도하지 못하고 퇴화해버렸다. 엄마가 편지를 전해줬더라면, 그랬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끝내 그를 다 읽지 못했다. 뒤늦게 써 내려간 내 마음을 보낼 수도 없었다. 겨우내 부치지 못한 편지 속으로 눈송이가 쌓였다. 열지 못한 사연들을 생각하며 나는 원고지의 여백 속에서 아직도 길을 찾고 있다. 그 빈 공간이 나를 가두고 밤새 어둑한 시의 골목길을 바라보게 한다. 원고지는 빗속을 건너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의 조도 낮은 카페로 나를 데려간다. 첫사랑은 내게 풀지 못한 숙제와 같다. 아직 당도하지 않은 시의 첫 소절 같다.

 

 

4. 파랑주의보

 

 

나는 서울에 오면서 목포 앞바다를 온통 들고 왔다. 기숙사의 쪽창으로 고향 바다가 넘실거렸다. 비린내 가득한 바다에서 고동 소리만 듣던 내 귀는 서울에 온 이후 그 푸른 소리를 풀어놓을 수 없었다.

 

가끔씩 견딜 수 없는 객수감이 찾아오곤 했다. 그런 밤이면 심야의 고속도로에 몸을 맡겼다. 나에게 목포 앞바다는 큰 울음소리를 내는 울돌목 바다와 같았다. 그 옛날 이순신이 바라보았을 죽음의 바다처럼. 나에게 시 쓰기는 넓은 해로에 좁다란 골목길을 내는 일이었다. 나는 죽기를 각오하고 갑옷으로 온몸을 무장한 채 적들을 기다리는 이순신 장군처럼 결사 항전의 몸짓이었다. 적이 오기를 기다리는 나의 심장은 바닷물보다도 더 빠른 수백 킬로를 내달렸다. 나는 문학이란 파랑을 향해 위태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격랑 속에서 무엇을 기다렸을까. 끝없이 표류하는 나에게 문학은, 시는, 검은 바다의 심장 같았다. 희미하게 시가 보일 듯 말 듯한 시간들은 거센 파도에 침몰되곤 했다. 생각해보면 힘들게 견뎌온 그 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삶이란 형식에 내용이 안 보이는 시절, 더 갈급이 나서 시를 쓰고 나만의 성채를 쌓았다. 동력이 떨어질 때마다 목포행 고속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별들이 쏟아졌고 버스 창문은 파도로 가득 찼다. 뒤집힌 고향 바다는 늘 새로웠다. 나에게 목포 앞바다는 늘 처음 맞이하는 바다였다.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안다. 바다에도 봄이 되면 싱싱한 싹이 튼다는 걸, 오래된 그것들이 무엇보다 새로운 것임을.

 

서울에서의 나는 밀려날 수밖에 없는 주변인이었다. 고향 바다를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졌다. 목포라고 발음하면 입안 가득 푸른 내음이 진동했다. 물밀려오는 그리움을 참으며 나는 기어코 내 소매 속에 숨은 푸른 새들이 날아오르기를 기다렸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언어와 더불어 매일 한 편의 시를 쓰고 싶었다.

 

어둠과 환희로 가득한 파란만장한 바다를 보며 나는 알몸인 듯 부끄러웠다. 목포 앞바다는 매일 고요 속에서 태어났고 그 속에서 태어난 빛은 경이로웠다. 나에게 그 빛은 시로 가는 통로였다. 깊은 고요 속에서도 흔들리는 힘찬 바다의 속삭임, 내 안으로 흐르는 물살의 흐름, 물의 심장과 깊은 물의 색, 어둡고 추운 바다 밑바닥에 숨어 있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생명체들이 내 안의 어둠을 함께 탐지해 나가고 있었다. 나는 출구 없는 탐사와 말들의 헤매임 속에서 나를 완성하고 싶었다.

 

고향 바다에 나의 병든 나체를 뉘어보니 심중이 보였다. 이 끔찍한 시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나는 기어이 목포 앞바다에 묻고 말았다. 파도가 스스로 깨지고 부서져서 끝없이 새로 태어나듯 내 속의 욕망과 어둠도 모두 지워버릴 수 있을까. 바다 위로 차고 시린 달이 내 그림자를 따라왔다. 흔들리는 달빛이 물 위로 기나긴 고랑을 그리며 어스름한 수평선 너머로 펼쳐졌다. 그때 나는 불가해한 시의 풍경에 압도되었고 또 얼마쯤 지쳐 있었다. 과연 수평선 너머로 내가 기다리는 새로운 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향한 나의 허우적댐은 계속되었다. 절망했지만 다른 길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내 몸은 온통 나이테만 감는 참나무였다. 이슥한 길을 달리며 나는 고정된 자전거의 페달만 돌렸다. 아침이 오면 내 안에 깃든 실낱같은 희망이 죄다 쏟아졌다.

 

서울에서 목포로 내려가는 차 간격은 내가 달려가는 시간의 발자국보다 항상 더 빠르고 붐볐다. 병증이 심해질 때마다 찰랑이던 목포 바다의 푸른 서정과 별빛은 서울의 빠른 속도, 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나는 그 속도전에서 매일 졌다. 나는 내 텅 빈 시의 서정을 찾으러 신한은행 카드단말기로 달려갔다. 나는 매일 마이너스통장으로 시를 인출했다. 차츰 마이너스통장 금액은 커져갔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나에게 시 쓰기는 휘몰아치는 바다에 내 시선을 던지는 일이다. 진심을 다해 시를 사랑하기. 시의 파랑 속에 머물러 있기. 그것만이 내 삶의 전부다. 나의 심장은 거센 바다 물살이고 내 오른손 엄지와 검지는 항상 시를 낚는 뜰채다. 어부가 뜰채를 들고 울둘목의 빠른 물살 옆에 서서 헤엄쳐 오는 민어를 채듯이

 

 

<포화 속 딸기는 발사된다>

김수형 시집(시인수첩 시인선 090)에 수록된 산문

 

 

 

 

 

김수형 시인

 2019년 <중앙신인문학상> <목포문학상> 당선. 시집 『사랑한 것들은 왜 모두 어제가 되어버릴까』 비평집 『존재의 푸른빛』 『남도문학기행』 연구서 『남도정신과 송수권의 시 세계』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