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시인수첩 봄호 인터뷰 - 박형준 시인
작성일 25-02-20 16:18
박형준 시인의 인터뷰
시인수첩 계간지가 2025년 봄호부터 웹진 시인수첩 새롭게 출발합니다.
첫발걸음으로 '시인과의 인터뷰' 코너를 통해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해 조명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김주원 평론가와 함께 박형준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영상에 담았습니다.
1) 시의 원동력
“저는 어린 시절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놀았어요. 그렇게 스쳐지나가며 들여다본 것들이 제 피부에 각인된 것 같아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도시에 살았던 도시인이에요. 제가 시골 사람이라는 건 오해입니다(웃음). 문학 습작기 시절부터 도시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고 또 그런 시를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냥 거리를 걷는 게 행복해요. 도시의 낯설고 인공적인 이미지에 끌리지만 저는 강가를 거닐다가 떠오르는 사물이나 추억과 만나는 게 더 좋아요. 휘트먼의 시 <나 자신의 노래>에 내게 속한 모든 원자는 당신에게도 속한다는 구절이 있어요. 휘트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강가를 거니는 것은 제 추억과 다른 사람의 삶과 접촉하고 공유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도시에 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그런 침묵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고 그것이 제 시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통증으로 찾아오는 낯선 사물들
3) 당신의 원자와 나의 원자가 공유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 안에 원형으로 자리잡은 여성이에요. 저는 늦자식이라 어머니와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늘 어머니를 기다렸어요.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셨고 늘 바쁘게 사셨어요. 그렇지만 저는 어머니와 직접적으로 공유되어 있다고 느껴요. 아버지도 마찬가지죠. 지나칠 만큼 두 분에 관한 시를 많이 썼어요. 저는 시를 통해서 두 분의 삶을 높여주고 싶었어요. 사소한 것들이긴 하지만 자식에게 들렀다가 버스를 타고 가는 어머니를 배웅할 때 느끼는 슬픔, 버스가 천천히 가는 것 같고 그 안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를 보는 것은 저에게 특별한 순간으로 남아 있어요."
"겨울에 두물머리 근처를 걷다 보면 자유롭던 철새들도 너무 추운 날은 모여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저에게 그런 존재예요. 제가 세상에서 춥지 않도록, 낄 데가 없어도 모여 있을 곳이 있다는 걸 알려주신 분들이거든요. 저는 농촌공동체나 자연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아요. 그것들은 저에게 그냥 선험적으로 주어진 거예요. 소외되거나 누추하게 느껴지는 원자들을 보면 저와 공유되는 지점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시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제가 시를 사물들에게 뭔가를 베풀어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사물들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었어요. 그 점에서 저는 사물들의 은택을 입었다고 생각해요.”
4) 이끌리는 것과 운명적 만남
5) 바탕에 있는 마음
6) 흩어진 채로 쓰고 싶은
“저는 사회인 야구를 하고 있어요. 목적 없이 어떤 유용함을 떠나 서로 즐겁게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사람은 행복한 것 같아요. 그런 만남이 삶에 활력을 주죠. 저는 그렇게 거짓 없이 공유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컴퓨터에는 그동안 써놓은 시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지만 당분간은 그렇게 계속 쓰고 싶어요. 그냥 보고 느낀 대로 떠오르는 것으로 쓰는 것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지금은 그래요."
"내가 배운 것을 조작하고 최소한 남들보다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면 오히려 많은 것을 빼앗기지 않을까요. AI 시대에 챗 GPT도 시를 쓰고 기발한 이미지들이 나오겠지만 오히려 일상적이고 평범한 쪽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낯선 손님이 선물을 들고 방문하듯 경험 속에서 언어가 찾아오면 그 선물이 아무리 사소해도 소중하게 여겨서 한 살림을 꾸려가도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