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잉 붓다>
시인선 106 / 홍은택 시인
26-04-10 11:28

홍은택 시집(시인수첩 시인선 106)
몸과 언어, 반복에서 발견한 감각 윤리와 시적 사유의 울림
홍은택 시인의 신작 시집 『플라잉 붓다』가 출간되었다. 세계의 낯선 풍경과 인간 내면의 깊은 사유를 결합해 온 홍은택 시인의 이번 시집은 여행의 장면과 존재에 관한 질문, 그리고 언어의 본질을 향한 성찰을 한 권의 시집 안에 밀도 있게 담아낸다. 카트만두, 루앙프라방, 사막과 섬, 그리고 일상의 골목과 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시집은 세계를 향한 시인의 시선과 그 속에서 되비쳐지는 인간 존재의 흔들림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내 몸이 흔들리는 날, 언어도 흔들린다 / 흔들리는 언어가 가끔은 본질을 스치는 순간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플라잉 붓다』 전체를 관통하는 시적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몸과 감각, 기억과 여행의 경험이 서로 교차하며 언어를 흔들고, 그 흔들림 속에서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존재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이 이번 시집의 중요한 미학적 성취다. 총 4부의 60편으로 구성된 시집의 1부는 삶과 죽음, 윤회와 영혼에 대한 사유가 펼쳐진다. 「주황의 나라에서」, 「플라잉 붓다」, 「영혼 나무」, 「탁발 의식」 등의 시편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낯선 공간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불러낸다. 특히 표제작 「플라잉 붓다」는 결가부좌를 풀자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장면에서 시작해 다시 땅으로 내려앉는 순간까지를 그리며, 초월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운명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몸과 그림자, 영혼과 빛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시집의 중심을 이루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2부에서는 언어와 기억, 시간과 존재의 문제를 보다 내면적인 시선으로 탐색한다. 「말의 지문」, 「고슴도치 딜레마」, 「허물을 입다」, 「천둥지기」 등의 시편은 말과 침묵, 관계와 고독 사이에서 인간이 겪는 심리적 긴장과 사유의 깊이를 보여준다. 특히 「천둥지기」에서 시인은 씨앗을 묻는 농부의 행위와 백지 위에 줄을 긋는 시작(詩作)의 순간을 겹쳐 놓으며 시가 태어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다. 이처럼 시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연과 일상의 장면 속에서 언어의 탄생과 시적 사유의 과정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3부는 사랑과 인연, 인간관계의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다. 「어떤 사랑」, 「전당포집 딸내미」, 「시절인연」 등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감정의 미묘한 결을 포착한다. 특히 「전당포집 딸내미」는 사랑과 관계를 전당포의 거래에 빗대어 독특한 서사적 긴장을 만들어내며, 인간 마음의 가치와 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관매도 함씨」와 같은 작품에서는 시대의 비극과 공동체의 기억을 조용히 환기하며 개인적 서정과 사회적 감각을 동시에 드러낸다.
4부는 예술과 감각,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을 다루는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빗 앨런 하비, 최민식 등 실제 예술가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들은 시와 사진, 시선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시인은 카메라의 뷰파인더처럼 세계를 바라보며, 사물을 포착하는 순간과 그것을 해석하는 인간의 시선을 동시에 성찰한다. 이 과정에서 시는 단순한 묘사를 넘어 존재와 인식의 문제를 질문하는 철학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 시집에서는 불꽃, 노을, 모래, 강물, 그림자, 새와 나무 같은 자연 이미지들이 시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시적 리듬을 형성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단순한 풍경 묘사에 머물지 않고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현실과 초월을 연결하는 상징적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여행의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를 성찰하게 만드는 시적 장소로 기능한다. 『플라잉 붓다』는 여행과 명상, 일상과 철학, 이미지와 사유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시집이다. 시인은 세계의 다양한 풍경 속에서 인간 존재의 흔들림을 바라보고, 그 흔들림 속에서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순간을 포착한다. 때로는 사막과 강, 섬과 도시의 풍경을 통해, 때로는 몸의 통증과 기억의 파편을 통해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결국 이 시집이 보여주는 것은 ‘떠오르려는 존재’와 ‘다시 땅으로 내려앉는 존재’ 사이의 긴장이다. 시인은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며, 언어가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을 탐색한다. 『플라잉 붓다』는 세계를 향해 열린 시선과 내면을 향한 깊은 성찰이 만나는 자리에서 탄생한 시집이며, 독자들에게도 삶과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사유의 공간을 제공할 것이다. 홍은택 시인의 『플라잉 붓다』는 여행의 풍경 속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길어 올리는 동시에,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한 감각과 사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몸과 언어, 세계와 내면이 교차하는 이 시집은 오늘의 독자들에게 시가 여전히 사유의 깊은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 ★
◨ 책속에서
결가부좌를 풀자
몸이 허공에 뜬다
몸이 땅에서 멀어지고
그림자가 흩어졌다
그림자는 몸에 깃든 영혼
영혼은 빛 속에 드러나는 어둠인데
무릎관절의 저릿한 통증이 애틋하고
내 그림자가 짓는 어둠이 간절해서
그만
땅으로 내려앉아야 할 시간
발밑을 날던 새가 힐끗,
날아가던 곳으로 날아간다
- 「플라잉 붓다」
사막에도 강이 흐른다
우기에만 넘쳐흐르는 강, 소노라 사막에서 일 년을 살았다 선인장 희고 노란 꽃이 피고 오래도록 해가 졌다 달 없는 밤 별똥별들이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 몸에 가시로 박혔다
붉은 먼지바람으로 떠돌던 나바호족 영혼이 허파 꽈리 깊숙이 스며들었다 기둥선인장 물관을 타고 바닥 드러낸 강이 무감하게 흘렀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상형문자 새겨진 암벽에 금이 가는 소리를 들은 것도 납작 엎드린 흙집들 우는 소리가 들린 것도 이미 사막이 된 내 몸속 와디가 마르고 흐르기를 되풀이하는 것도
- 「와디」
꼭 십 년이네…
말끝을 흐린 그가
맹골수도 너머 병풍도 쪽 바다를 본다
노랑부리백로 한 마리
홍주 빛 노을 속으로 가라앉고
그날도 바다는 고요했을 것이다
섬은 배를 보냈고 사람들은 기다렸다
그물로 건져 올리려던 것은
이름들이 아니었다
수면 아래 서로를 놓지 못한 어린 손들
잠들기 전 숨이 명치까지 차올랐던 밤
환청처럼 들리는 요령 소리
돛 없는 꽃상여 한 척이
차가운 달빛 곁을 쓸고 지나간다
섬,
내 몸의 오지에서
끝내 뭍으로 건너오지 못한 말들이
파도에 씻겨도 닳지 않는
흰 뼈로 남고
오늘도 바다는 비어 있다
숫자 뒤에 가려진 얼굴들
수평선 위로 일제히 눈을 뜨는 저녁
- 「관매도 함씨-2014.04.16」
기억 속 어느 갈피에도
없는 그 여자 허리춤
왼쪽 허리께 불쑥 손 넣어 늑골 안쪽
둥글게 만져지는 벼루 하나 꺼낸다
움푹, 허전함에 한 며칠
그녀의 불면을 갈아 흘려 쓴 편지
귓가에 스며 번지지 못할 문자들
그토록 단단한 여자를 본 적이 있어
물푸레
달인 물로 먹을 갈면 짙은 봄밤이 뚝 뚝 떨어지고
둥글게 입 오므려 봄을 받아먹고 밤을 받아먹고
살갗이 이파리처럼 손톱 발톱 실핏줄까지 물들고
몰래 나무 한 그루 푸르게 일어서는 새벽
그 여자, 내 심장에 박힌 옹이 같은
- 「물푸레 벼루」
네 몸의 중심에서 울려 나오는 파장과 내 몸의 중심에서 울려 나오는 파장이 청동 주발 속에서
조그맣게 운다 울며 몇 바퀴를 돌았을까 고즈넉이 살 섞으며 전율하는 울음과 울음 점점 넓어지고 가팔라져
몇 바퀴를 돌았을까 생의 침침한 골목을 걷다가 느닷없이 뒤통수를 얻어맞는 청청한 슬픔
속을 텅 비우며 차오른다 끓어 올라 한사코 안으로 말려드는 청동의 맑은 주파수가 뼛속으로 배어드는
하나인 듯 둘인 듯 각각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청동의 몸 시리도록 흔드는 영혼의 노래
한 번의 울음으로 몇 번의 생을 돌아 나와야
내 울음의 빛깔이 될까
- 「싱잉 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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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내 몸이 흔들리는 날, 언어도 흔들린다
흔들리는 언어가 가끔은 본질을 스치는 순간이 있다
2026년 3월
홍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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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산문 엿보기
품위 있는 반복, 늦게 도착하는 생각
내게 시는 생존의 기술이다. 마음이 허기질 때마다 나는 자주 걷고 자주 본다. 걷는 동안 생각은 몸속에서 말라가고, 보는 동안 감정은 사물의 표면으로 달아난다. 그 달아나는 것들을 붙잡아 종이 위에 눕히는 일이 나의 시 쓰기다.
이 글은 내가 시를 창작할 때 반복하는 세 가지 움직임―걷기, 보기, 쓰기―을 따라가며 내 삶이 어떻게 사물과 부딪히고 또 어떻게 화해하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Ⅰ. 걷는다는 것
오늘의 도시는 걷는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버스 시간표, 지하철 환승, 보행자 신호, 인파의 속도, 휴대폰의 알림, 예약과 일정, 이 모든 것이 내 발목에 자잘한 규칙을 매단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작은 자유’를 만든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오는 자유, 편의점 앞에서 잠깐 멈추는 자유, 원치 않는 대화에서 조용히 빠져나오는 자유. 시 쓰기를 발화시키는 이런 식의 최소 단위 이동을 즐긴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걷기의 본질로 ‘자유’를 선택한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발이 허락받는 권리’, 즉 ‘내가 원할 때 떠나고 돌아올 수 있는가’에 대한 아주 현실적인 질문이다. 사회가 나를 규정하려 드는 순간, 걷기는 규정 바깥으로 한 발을 내딛는 기술이 된다.
루소의 고백에는 날것의 온도가 있다. “혼자서 두 발로 여행할 때” 그는 자신이 가장 자기답다고 느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행’이 아니라 ‘두 발’이다. 걸을 때 나는 몸의 리듬을 되찾고 생각은 그 리듬에 맞춰 정직해진다. 말하자면 걷기는 마음의 무게추를 다시 몸의 중심으로 가져오는 도구다.
걷는 동안 루소는 세상을 변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물러난다. 그의 산책에는 맑은 풍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신과 오해와 상처가 같이 걸어 다닌다. 상처가 그를 더 예민하게 만들고 예민함이 그를 더 정확하게 만든다. 자연을 찬미하는 문장 속에서 그는 자기 마음의 흉터를 만진다.
우리는 종종 ‘큰 결심’을 해야만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내 경험은 그 반대다. 변화는 사소한 루틴에서 시작된다. 외출을 미루다 문득 밖으로 나가는 일,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택하는 일, 집 앞 골목을 한 번 더 돌아가는 일. 걷기의 이 작은 선택들이 마음의 혈액순환을 바꾼다. 마음도 피처럼 순환이 필요하다. 정체된 마음은 쉽게 탁해진다.
(중략)
여행이 주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감각의 재시동이다. 익숙한 곳에서는 신경이 게을러진다. 익숙함은 편하지만 편한 만큼 둔해진다. 낯선 거리의 냄새, 낯선 언어의 리듬, 낯선 조리법의 자극이 몸을 깨운다. 그때 ‘나’라는 사람이 새롭게 보인다. 여행은 외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습관을 낯설게 만드는 장치다.
걷다 보면 가끔 길을 헤매고 늦고 지친다. 그러나 그 지침이 문장을 낳는다. 정확히 말하면 지침 자체가 아니라 리듬의 붕괴가 문장을 낳는다. 리듬이 무너진 자리에서 언어는 긴급하게 임시 다리를 놓는다. 길을 잃을 때마다 나는 ‘지도’가 아니라 ‘감각’으로 돌아오는 법을 배운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방향을 잃는 일이 아니며 말의 질서를 잠시 잃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새로운 문장이 들어온다.
걷는 동안 우리는 무언가를 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에 가장 많이 쓴다. 언어를 생산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간, 그러면서도 가장 깊이 수확되는 시간, 걷기는 그 시간을 열어 준다.
걷기가 깊어질수록, 명상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잠시 중력에서 해방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무릎관절의 저릿한 통증이 애틋하고/내 그림자가 짓는 어둠이 간절해서/그만/땅으로 내려앉아야 할 시간”(「플라잉 붓다」)이 반드시 온다. 비상은 아름답지만 착지는 필연이다. 시 쓰기도 그렇다. 아무리 높이 날아도 결국 구체적인 사물로, 일상의 언어로 내려앉아야 한다. 걷기의 목적은 도착이 아니다. 걷기는 눈을 열기 위한 준비운동이다. 발이 멈추면 눈은 그때부터 자기 일을 시작한다.
홍은택 시인
1999년 《시안》 등단
전) 대진대학교 영어문학과 교수
시집으로 『痛點에서 꽃이 핀다』 『노래하는 사막』 등
paters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