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아닌 당신>

시인선 109 / 조영란 시인

26-10-28 15:10

조영란 시집(시인수첩 시인선 109)

 

 

피지 않은 모란이 자라는 뜰

- 조영란의 부재 시학

 

 

조영란 시인이 시집 『모란이 아닌 당신』(시인수첩 시인선 109)을 펴냈다. 4부에 걸쳐 56편의 시를 싣고, 말미에 산문 「독특한 틈」을 더했다. 시인의 말 첫 문장은 “도착하지 않은 것들의 목록이 있다”이다. 이 한 줄은 서문을 넘어 차례 전체를 다시 읽게 하는 색인이 된다. 끝내 오지 않은 것, 이미 떠나버린 것,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는 것. 시인은 그것들을 불러들이려 애쓰기보다, 그것들이 비워둔 자리의 윤곽을 더듬는다. 표제작 「모란이 아닌 당신」은 이 시집의 무게 중심이다. “나의 뜰에는 모란은 없지만 / 아직도 모란은 자라고”. 김영랑의 시가 모란이 피우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면, 이 시의 모란은 피지 않은 채로 자란다. 부재는 결핍으로 머물지 않고, “기억으로 회자되는 사적인 계절”을 길러내는 토양이 되어 준다. 제목의 ‘아닌’ 또한 부정의 표지라기보다 누군가의 자리를 비워두는 문법에 더 가까워 보인다. 비워둔 그 자리에는 “모른 체했던 시간들”이 남아 있다. 시인은 그 시간을 “영영 끝내지 못할 시 한 편”이라 부른다.
 이번 시집의 가장 독창적인 동작은 ‘떠내기’다. 「한순간의 스냅」에서 시인은 화산재 속에 몸의 형상만 남긴 폼페이 여인 앞에 선다. 그리고 다짐한다. “나는 떠낼 것이다 / 사라진 문장의 뼈와 살을,”. 「나무에 등을 대고」에서는 “상처투성이 영혼을 탁본”하고, 「흑백사진」에서는 “어둠의 손”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꽃을 인화”한다. 사라진 것은 음각으로 남고, 시는 그 음각에 언어를 부어 형상을 되살린다. 그러나 시인은 이 작업의 위험도 알고 있다. 「도마의 일」에서 “상처가 그려낸 그림을 아름다운 무늬라 오해”하고, 끝내 “그걸 운명이라고 믿게 될까 봐” 두렵다고 고백한다. 상처를 떠내되 그것을 박제된 아름다움으로 굳히지 않으려는 태도가 시집 전편에 서늘한 윤리를 부여한다.
 떠내는 손이 있다면, 멈추지 않는 발도 있다. 「배회의 기술」의 화자는 달이 보이는 골목을 찾아 헤매다 “배회하는 일이 점점 기술이 되어간다”라고 적는다. 이어 「화살표를 따라가다가」의 화자는 “걸음을 멈춘 적 없는데 도착을 안 하네”라고 중얼거리다 되묻는다. “도착은 꼭 해야 하나”. 「종점을 향해」라는 만원 버스의 하루를 버티는 몸을 따라가다 “아직, / 내리지 않는다”라는 마지막 두 행으로 끝을 유예한다. 흥미롭게도 「화살표를 따라가다가」라는 「어떤 슬픔은 냄새를 가질 수도 있다」와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결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시는 다시 출발한다. 그러니 이 시집에서 길을 잃는 일은 실패가 아니라 걸음을 이어 가는 또 하나의 방식인 셈이다. 시인의 말에 적힌 대로, 배회하던 하루에도 그 나름의 눈부심이 어려 있다. 관계를 다루는 시편에서도 시인은 거리를 지우지 않는다. 「수평」에서 외나무다리 위에 마주 선 두 사람은 밀어내지도, 끌어당기지도 않는다. 화자는 “우리 사이에 있는 거리가 / 서로를 붙잡아주는 끈이었다”라는 사실 앞에서 머뭇거린다. 「‘우리’라는 이름의 거리」는 오해와 침묵이 서로를 살찌우는 “기형적인 평화”를, 「불협화음」은 어긋나는 들숨과 날숨이 “이상하게 아름답다”라는 발견을 기록한다. 「마요네즈」는 서로의 경계가 지워진 관계의 끝을 비춘다. 경계가 무너진 끝에 남는 것은 “누구의 이름도 남아 있지” 않은 섞임뿐이다. 가까움을 지키는 것은 포옹이 아니라 간격이라는 역설. 이 시집의 관계론은 거기서 비롯된다. 4부에 이르면 그 거리의 감각은 타자의 생으로 넓어진다. 「진열된 울음」은 펫숍 케이지 안의 강아지를, 「선반」은 가족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구가 되기 위해 벽이 된 사람”을 비춘다. 「만보」에는 걸음 수를 채우려 “돌아갈 이유가 없는 골목을 한 번 더” 도는 저녁이 놓여 있다. 그중에서도 「애벌레 구하기」의 마지막 장면은 유독 오래 남는다. 개미 떼에게서 구해냈다고 믿은 애벌레가 “자꾸 / 흩어졌던 개미들이 다시 모인 곳으로 기어간다”. 구하려는 손길마저 하나의 간섭일 수 있다는 듯, 시인은 그 어긋남을 교훈으로 바꾸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본다. 시집 끝에 실린 산문 「독특한 틈」은 이 바라봄의 기원을 들려준다. 맞지 않는 모자를 쓴 채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어울리는 사람답게” 살아온 시간이 먼저 펼쳐진다. 그 시간이 벌려 놓은 “‘가장 나답지 않은 나’와 ‘가장 나다운 나’와의 간극”이 곧 “시작(詩作)의 시작(始作)”이었다고 시인은 털어놓는다. 그러니 시는 해답을 내놓는 일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이 된다. 안전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 ‘목격자’, 시인이 스스로 걸어 들어간 길이다. 
1부의 마지막 시 「갱신」에서 시인은 손바닥을 펼친다. 너무 세게 움켜쥐어 짓무른 이름들, 굳은살이 된 자리, 지문만 남은 손. 그리고 바닥을 짚으며 “조금 더 버텨보는 빈손”이라 쓴다. 『모란이 아닌 당신』의 56편은 그 빈손을 천천히 펼쳐 보인다. 쥔 것 하나 없이, 쥐었던 자리만 선명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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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도착하지 않은 것들의 목록이 있다.

기꺼이 길을 잃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길 위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배회하던 하루도 나름대로 눈부셨다. 

2026년 10월 조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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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속에서

   
나의 뜰에는 모란은 없지만
아직도 모란은 자라고
기억으로 회자되는 사적인 계절이 있지

꽃잎 흔들어 놓고 숲으로 사라져 버린
나비는 이제 보이지 않지만
숲 너머의 문 근처를 맴돌던 날개가 약속처럼
바람이 되어 불고 있어

모란의 그림자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노래를 불렀지

그것은 알면서도 모른 체했던 시간들
영영 끝내지 못할 시 한 편

제 이야기를 숨긴 채 달은 기울고
모란은 슬픔을 잊은 채 피어나고

- 「모란이 아닌 당신」

 

 

내가 입을 다물자
너는 없던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뭔가 있는 것 같다고

신비는 늘 그렇게 왜곡되곤 하지

상상은 넓은 들판을 뛰어다니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너는 풀을 뜯는 이국의 말들을 그려내고
민들레 풀씨에 바람의 관절을 달아준다

은유는 멈추지 않는다
소문은 그늘 아래 잎맥처럼 번지고
서로의 이름을 닮아간다

나는 연못처럼 고요하다
뛰어들고 싶어 안달하는 눈동자
수면 위를 겉도는 가벼운 파문들

차라리 다행이다
너의 오해가 나의 비밀을 가로질러 가고
나의 침묵이 너의 상상을 살찌우는 이 기형적인 평화
발을 곧추세워도 닿지 않는 바닥이
우리를 침몰시키지 않고 떠받치고 있다는 게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이제 확인할 차례다
가장 완벽하게 분리되어 비로소 안전해진
‘우리’라는 이름의 거리

- 「‘우리’라는 이름의 거리」

 

 

우리는 서로 원수도 아닌데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너를 밀치고 갈지 피해서 되돌아갈지 생각한다

여기가 우리의 벼랑이라면
서로를 밀쳐낼 것처럼 불안하다면
그것은 이미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너는 악수가 뭔지도 모르면서 손을 내미는 사람
덥석 손잡을 생각은 없지만 손바닥 온기는 탐났다

끌어당길지 끌려갈지
잡아보면 안다는 이치를 모른 체하는 나에게 너는 말했다
우리 잠시 그냥 이대로 있기로 하자
기를 쓰고 다리를 건너봐야 별것 없을 거야

출렁이는 강물 한가운데였다

아직도 외나무다리에 서 있다
서로 떠밀지만 않으면 영원히 이대로일 것 같은 
우리 사이에 있는 거리가  
붙잡아주는 끈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 「수평」
 


손바닥 위로 시간이 지난다

진한 손금 외엔 잡힌 것이 없다
쥔 자리만 선명하다

너무 세게 움켜쥐어 짓물러 버린 이름들
펴지지 못한 채 굳은살이 되어버린 자리들

또 쥔다

지문만 남아 있다
땀도 열도 없이

텅 빈 악력 속에 터지지 못한 열

나는 바닥을 짚는다
한쪽으로 쏠리는 체중
조금 더 버텨보는 빈손
 

-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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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산문 들여다보기—조영란 산문으로 바꾸기

 독특한 틈


                                                           조영란 시인

 

  모자를 선물 받았다. 내 머리보다 큰 모자는 자꾸 시야를 가리고 귀를 덮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게 되자 점점 걷는 일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내 어둠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머리를 담아내는 ‘모자’라는 공간은 이토록 구체적이고 직설적이다. 어제는 모자가 작아서 머리가 아팠고 오늘은 너무 크고 헐거워서 앞이 캄캄하다. 맞지 않는 모자를 쓰고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어울리는 사람답게 살려고 취했던 것은 일종의 포즈였던 것. 이젠 모자를 벗어볼까. 강한 햇빛에 있는 그대로의 민낯을 들이대 볼까. 대학 졸업 축하 자리에서 한 선배는 내게 말했다.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해도 언제나 그 자리에 맞는 사람답게 살라는 충고였다. 자라면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모나지 않게 그저 둥글둥글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튀지 않는 삶을 선호했다. 최선을 다해 타인이 원하는 나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의심도 확신도 없이 ‘지금,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내 고유의 색깔을 잃어갔다. 맞지 않는 모자와 머리 사이의 공간처럼 ‘가장 나답지 않은 나’와 ‘가장 나다운 나’와의 간극에서 비롯된 갈등이 내 시작(詩作)의 시작(始作)이었다. 신선한 공기와 직사광선으로부터 보호받았던 시간은 그럴만한 논리와 당위가 있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삶에도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즐거움도 슬픔도 없는 권태로 이어졌다. 우울증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했던 사람이 지젝이었나. 그렇게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생각은 너무 멀리 가서 돌아오지 않고 어느 날은 어딘가에 처박혀 빠져나올 줄 몰랐다. 이렇게 갈피 없는 삶의 정면을 보는 일,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 또 발견한 척 가장하는 가여운 제스처까지. 나는 그 모두가 시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너는 손이 너무 차갑구나

손이 따뜻해지면
제가 이 알을 부화시킬 수 있을까요

일생을 굴려도 불가능한 미래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껍질 속에 갇힌 것들은 생각이 많고
그러다 때를 놓치는 일이 잦은 법이라고

망치는 약한 곳만 골라 내리친다
악의도 선의도 없이

우리는 서로 통증의 목록을 쥐고 있다


                               -「모르는 호두」 전문

 


 내 안에 등장하는 나라는 화자들은 만남이 원활하지 못하다. 스스로 격리되고 단절된 자폐의 문 앞에 서 있을 때가 많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 내게 존재하는 한 왜곡된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질적인 나를 발견하는 일은 시를 쓰는 일과 별개의 작업일 수 없다. 무언가를 만나기 위해 통과의례처럼 미리 겪어야 하는 고독과 서성이는 그 시간이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행복하다면 믿을 수 있을까.
 꺼내고 싶었다. 내 안에서 울리는 심장 박동 소리, 오랫동안 마음에 끼어 있던 낯선 기억들을 꺼내고 싶었다. 긴 시간 불편한 자세로 살다가 변형된 자의식의 측만에서 삶의 원형을 회복하고 싶었다.


 속눈썹이 덮고 있는 네 눈동자의 비밀을 상상하다 보니 네가 누군지 모르겠다 우울이 몰려다닌다 밤낮으로 몰려다니는 연쇄 우울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너를 읽고 또 읽고

 파고들다 보면

 깊은 그늘에 갇힌 너의 첫인상

-「미해결 인물」 부분

 

 

절벽에 서 있는 나를 시로 옮기는 일은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 현장을 누비는 일, 그것은 아마도 매일매일 좌절하는 한 사람의 나를 목격하고 절망의 단서를 찾으려 동분서주하는 일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영란 시인

2016년 《시인동네》 등단
시집으로 『오늘은 가능합니다』 『오늘은 가능합니다』 등

 

se181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