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천사들이 큰 나무 우듬지에 있는 걸 보았네

장석주 - 2026년 봄호

2026-01-27

  소년은 천사들이 큰 나무 우듬지에 있는 걸 보았네*

 

 

 

  장석주

 

 

 

  한 소년이 혼자 들판에서 놀고 있는데 큰 나무 우듬지에서 천사들이 하얀 날개를 흔드는 걸 보았네. 천사들은 무슨 기쁜 일이 있는지 웃고 있었네. 소년은 얼어붙은 듯 그 광경을 쳐다보다가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와서 제 어머니께 그 이야기를 전했네. 그랬더니 어머니는 소년을 어리석다고 야단치며 내쫓았네. 소년은 들판으로 달려가 큰 나무 우듬지 밑에 섰는데, 아까 보았던 천사들은 보이지 않았네. 소년은 이마 반듯한 사내가 되었다가 되고 검은 머리에 서리 내린 듯 흰머리 노인이 될 때까지 어디서도 천사를 만난 적이 없었네. 노인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망각의 나라로 건넜건만 큰 나무 우듬지에서 천사들이 웃는 광경은 꿈속에서조차 잊지를 못했네.

 

*윌리엄 블레이크의 일화에 착상해서 쓴 시다.

 

 

 

 

  

    

  

  장석주 시인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로 등단.

  시집 몽해항로,오랫동안,일요일과 나쁜 날씨,

  질마재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