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와 소금의 밤
김미량 - 2026년 봄호
2026-01-28후추와 소금의 밤
김미량
꿈에
좀비가 따라붙었다
겁 많은 것을 알고 나온 것처럼
바디로션 향을 맡으며 온다
미리 틀어놓은 숙면 음악이 소용없었나
굵은소금을 뿌리며 모퉁이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작은 후추통을 던졌다
너에게는 폭소로
나에게는 폭발로
그건 아니겠지만,
살기를 탕진하려는 몸짓으로
나를 겁주러 나온 걸까
하얀 밀가루로 금을 그어두었다
미신이라도 믿는 것처럼.
나는 소용없는 일을 소리 없이 실천한다
가끔 소용없는 일이 통할 때도 있으니까
어둠 속에서 마지막 남은 라이터를 켰다
좀비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다시 돌아서면 심장은 터지니까
들리지 않은 척
들키지 않으려고
벽에 이마를 대고 끙끙거리는 밤
나쁜 기억이 먹구름처럼 찾아왔다
검은 지우개로 우리를 지운다
얼굴은 남고
몸통은 사라져 뛰쳐나올 수 없다.
조금 남겨진 잠
견과류 부스러기에 섞여 있는
꿈틀거리는 꿈을 꾸고 깸
우리는 얼마나 오래 밤에 섞여 있었나
불평이 다 사라졌을 때의 희망처럼
좀비가 사라지고 착한 겨울비 내렸다

김미량 시인
약력: 2009년 《시인시각》 등단
시집: 『신의 무릎에 앉은 기억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