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방
이은화 - 2026년 여름호
2026-06-01신들의 방
이은화
힌두교 기도문이 내 방을 침범했다
막을 수 없어 수면용 귀마개를 샀다
이번에는 주기도문이 침입해 침대를 점령했다
잠 좀 자자고, 따지고 싶지만 문을 걸어 잠근
옆집 사내의 얼굴은 볼 수 없다
졸음을 털어낸 목청 트인 절규로
그가 사람의 얼굴을 주라고 울부짖는 동안
나는 저 소음을 멈추게 해 주라고 빌어본다
빌수록 옆집의 신들은 이 방에 군림하는데
벽이 무너질까 등으로 받치면
기도문을 외며 이마를 찧는 소리
아침이면 벽은 견고해지고 집은 평온해진다
아랍 인도의 혼혈인 이주민이 사는 집
분향焚香처럼 커민향이 창을 넘어올 뿐
목소리의 존재는 그가 섬기는 신처럼 아득하다
주기도문 대신 알 파타하 암송이 들린다
종교를 바꾼 사내의 절절한
낯선 기도문을 들으며 나도 손을 모은다
불법체류자였다는 소문과 함께
사내가 밤길을 떠난 뒤, 혼자 남은 방에서
옆집 사내의 신들을 불러본다
끝내 자신을 규명하지 못한 채 떠난 사내가
얻고자 한 얼굴은 어떤 이름이었을까
그의 얼굴에 깃든 신을 보지 못한 나는
내 방을 거쳐 간 신들의 이름을 흥얼대며
얼굴 없는 신과 동거한 사내의 얼굴을 그린다
이은화 시인
2010년 《시로 여는 세상》 등단.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