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아주 먼 곳에

채호기 - 2026년 가을호

2026-08-15

  저 멀리 아주 먼 곳에

 

 

 

  채호기  

 

 

 

  마른 모래에 쭈그려 앉아 망망대해를 내다보는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있나요.

  결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무한한 도주에 망연한가요.

  폐부를 감싸는 손가락의 간결한 음들이 소용돌이치는 물거울 밖으로 숨 막혔던 숨을 간신히 터뜨리나요.

 

  저 멀리, 아주 먼 곳에, 물에 잠겼다 잠깐씩 드러나는 돌출된 그곳이,

  부서져 회오리치는 커다란 흰 물 다발에 에워싸이는 암초 그곳에,

  반짝이는 거의 보이지 않는 파편 하나가, 바다 끝을 내다보는 사람의 물에 비친 내면인가요.

 

  늘 요동치는 차가운 바다로 사람이 들어갈 때 사람의 눈은 먼바다의 조용한 말 없음을 듣고 있나요.

  갑자기 바람이 불고 해안 절벽에 파도가 요란하게 부서질 때 가슴을 후려치는 물살의 솟아오름이 내면의 세찬 파도에 휩싸이나요.

  딛고 있던 발을 물에 풀면서 턱을 치켜들고 팔을 휘저어 헤엄치는 사람은 저 멀리 사람이 사라진 그곳을 향하는 먼 파도의 하얀 거품인가요.

 

 

 

 

 

  

  채호기 시인

  1988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지독한 사랑』 『슬픈 게이』 『밤의 공중전화』 『수련』 『손가락이 뜨겁다』 『레슬링 질 수밖에 없는』 『검은 사슴은 이렇게 말했을 거다』 『줄무늬 비닐 커튼』『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이상한 밤』,

            산문집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 『주고, 받다』(공저).

  수상 :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