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의 밤
김언 - 2026년 가을호
2026-08-15하오의 밤
김언
하오는 넓다. 정오부터 시작하여 해가 질 때까지, 해가 져서도 캄캄해질 때까지, 캄캄함이 더 깊어지는 심야까지도 하오는 분포한다. 넓게 퍼져 있다. 자정만 넘기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데, 그때는 이미 하오의 의미도 상당히 죽었을 때이다. 하오는 죽으면서 깊은 밤을 남긴다. 상오가 태어날 밤을 다음 날 새벽까지 남긴다. 하오가 남긴 밤은 하오가 남긴 밤이지만 하오의 것이 아니다. 상오의 것도 아니다. 밤은 밤이다. 하오가 남겼든 상오가 이어받든 밤은 하오에도 상오에도 간섭받지 않는 시간을 거느린다. 밤은 밤이다. 낮이 낮이듯이 하오는 넓게 퍼져서 낮의 절반을 감당하고 저녁의 일부도 감당하고 밤의 일부는 극히 일부라서 감당한다고 해봤자 한 줌도 안 되는 무게감으로 감당한다. 하오의 최변두리에 깊은 밤이 있다. 하오의 최전선에도 깊은 밤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이 밤이 있고 전선이 있다. 깊어갈수록 밤이다. 희미해지는 전선이다. 하오는 여기까지만 관여하고 물러난다. 자정이 오기 전에 이미 철수한 군대 같다. 싸운 적도 없이 머물다가만 간 것 같다. 주둔한 흔적도 없는 듯이 간 것 같다. 하오는 물러갔다. 물러간 흔적도 없이 물러갔다. 열대야처럼 한낮의 더위가 밤까지 기승을 부릴 때에야 겨우 하오의 흔적을 떠올리는데, 열대야도 영원하지는 않다. 하오가 하오를 넘어서까지 연명하지 않듯이. 하오는 잠시다. 언제 하오가 있었냐는 듯이 하루가 바뀐다.

김언 시인
1998년 <시와사상> 등단.
시집 : 『숨쉬는 무덤』,『거인』,『소설을 쓰자』,『모두가 움직인다』,『한 문장』,『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백지에게』등.
수상 : 대산문학상, 김현문학패, 박인환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