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만을 말하다
이장욱 - 2026년 가을호
2026-08-20사실만을 말하다
이장욱
나는 사실만을 말하다.
몰려오는 구름처럼 쏟아지는 비처럼 여름 홍수처럼
마침내
죽은 사람처럼
사실만을 말하다.
사실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사실이 넘치는 거리를
나는 걷다.
그 거리에서 당신을 생각한다는 것
생각은 사실이 아니어서
오늘은 구름처럼 떠돌다.
이 새끼야, 그래서 말이 없어진 거야?
시제도 사라진 거야?
옛 친구가 전화를 걸어오다.
욕설을 던지며 그리워하다.
그것이 영 잊히지 않다.
확성기가 유튜버가 군용트럭이 시위대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사실 같지 않은 거리에서
믿을 수 없는 거리에서
어제와 내일은 같은 곳으로 흘러들다.
바로 지금 이곳으로
우리의 마음은 사실이 아니어서
칼처럼 총알처럼 폭탄처럼
날아가지 않는 걸까요.
당신은 죽은 사람처럼 질문을 하고
질문은 사실이 아니어서
아무도 대답하지 않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무한한 대답이 쏟아지다.
그런 것이 사실의 세계라는 듯이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기울인 채
옛 친구에게 전화를 걸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다.
영영 응답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죽은 채 바라보는 사람처럼
먼 저편을 향해
귀를 기울이다.
이장욱 시인
199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정오의 희망곡』,『생년월일』,『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음악집』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