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대다
허향숙 - 2023년 겨울호
2025-03-01
덧대다
허향숙
칡넝쿨로 짠 원피스에 좀이 슬어 군데군데 구멍이 생겼다 친구가 해준 세상에 하나뿐인 옷 아끼느라 제대로 입지도 못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기장이라서 옷장에 넣으면 구겨질까봐 책장에 못을 박아 걸어 둔 게 화근이다
바늘과 실을 꺼내 조심스레 구멍을 메웠다 역력히 드러나는 흠집들 그 흠의 집들을 본 딸은 "버려요 요즘에 누가 옷을 기워 입어요" 한다 나는 확 울상을 지우고 웃으며 "무슨 소리야? 그 집들 옆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어 줄 거야 아마 나비가 와서 내려앉을걸!"
살다 보면
덧댈 일 천지다
구멍 난 마음들
올 나간
인연들

허향숙 시인
2018년 <시작>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그리움의 총량』전자 소시집『슬픔은 늙지 않는다』가 있음.
AI 해설
이 시는 낡은 옷을 기우는 모습을 통해 삶과 관계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세월이 지나며 생긴 흠집을 단순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덧대고 아름답게 가꾸려는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딸은 낡은 것을 버리라고 하지만, 화자는 그 자리에 꽃과 나무를 심듯이 의미를 더하려 합니다. 이는 삶에서도 상처 난 마음과 끊어진 인연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보듬으며 살아가야 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결국, 덧댄다는 것은 단순한 수선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따뜻한 방식임을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