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는 사람
김한규 - 2023년 겨울호
2025-03-01
끊어지는 사람
김한규
단속적斷續的 근무입니다.
연결되지 않은 길의 공사장
처리되고 있다, 흙이
아까 저기에, 보이던데, 뭐 금방… (유리창에 손바닥으로 그늘을 만들고 들여다보며) 상관없이 있겠죠 뭐, 멀리 못가요, 있으나 없으나 항상 그렇죠 뭐,
뭐가없다는것은별것이아니고가봐야벼룩이고신경쓸거없는거니까걱정마시고볼일보세요.
진공 속을
진공 속에
언제나 보이는 머리통을 잠가놓고
아침이면 거울이 기어이 거울이 죽고 있는 낯가죽을
벗기고 있다, 어디 가겠어요? 화장실은 가야 하니까 뭐, 올 수밖에 없이, 아 저기, 뭐랬어요, 보이네요, 뭐가 없다니까요.
관심 없는 뒤통수를 두고 다른 뒤통수가
커튼을 치며
자, 어디까지 했었죠?
오늘 다룰 주제는 직업에 따른 인식의 변화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의 직업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는 거죠 그리고 그 변화… 그러니까, 아까 우리가 그 유령 같은 직업을 보았죠?
초파리가 발생하면
앞날은 유망해진다
논문이 먼저 복사기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서로는 헤어지기 무섭게 기다린다 공부하고 연구합시다 칠십 세가 넘은 노인들이 성관계를 얼마나 하는지를 연구한 분도 계세요 연구하고 공부합시다 안 보이는 자들을 찾아서 꼬치에…
초파리는 초파리인 채로 툭, 끊어져 뒹구는 자의 머리통 주변을 유유히 선회한다
자, 이제 정리해봅시다 유령 직업은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자들이죠 그러니까 익명과는 다른 것입니다 익명은 보이기는 하지만 보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 아, 드디어 비가 오네요 저기 화분 좀 밖에 내다 놔 주실래요?
강좌가 끝나고 조명이 꺼지고
빗속에서 선인장이 선명해진다
공부합시다!
김한규 시인
2017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가 있음. 부마항쟁문학상, 박상륭상 수상.
AI 해설
이 시는 단절과 익명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조명합니다. 공사장, 유령 직업, 초파리 같은 이미지들은 연결되지 못하고 끊어지는 존재들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쉽게 잊고, 사회적 인식은 직업이나 가시적인 역할에 따라 변하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이들은 무시되거나 잊혀집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개인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지고, 의미 없는 연구와 무심한 관심만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의 "공부합시다!"는 공허한 외침처럼 들리며, 사회가 진정으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되묻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