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곁에

허유미 - 2023년 겨울호

2025-03-01

 

 

 

 

바다 곁에

 


허유미      

 

 

            

파도 센 날은 갈치다방에 갔지

 

오갈 데 없는 다방 레지들 속옷과 옷을
오갈 데 없이 앉아 빨았지
레지들 옷에서 사루비아가 피고 
새털구름이 지나갔지 보송하고 말랑한 속살 흉내 내듯
비누 거품이 가슴과 아랫배를 타고 흘렀지
바다에 들지 않아도 손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숨을 쥐어짜며 빨래를 했지
해가 설핏해져 사내들 몰려오면
다방 안을 가로지르고 나왔지
기지바지 입은 남편이 구두 흔들거리며
성냥 입에 물고 은빛 웃는 모습 몇 번 보았지
모래바람을 맞은 듯 종일 눈이 따끔거렸지

 

광목 물옷 입다가
고무 해녀복이 나왔지
몸에 물이 들어오지 않아 물질 오래 할 수 있어서
너도 나도 사는데
한 벌에 
밭 두마지기 값에 놀라
윗옷만 샀지아래는 스타킹을 입으면 되니
스타킹은 갈치 다방 빨래 해주면
여러 얻을 수 있었지

 

그런 물결도 있었지 

 

 

 

 

 

 

 

허유미 시인

2016년 <제주작가>, 2019 <서정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우리 어멍은 해녀』가 있음. 박영근 작품상 수상.

 

 

 

 

AI 해설

 

 

이 시는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고단한 삶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다방에서 빨래를 하며 생계를 잇는 여성들의 노동과, 생존을 위해 몸을 담그는 바다가 대비되며 현실의 거친 물결을 보여줍니다. 고무 해녀복이 나오면서도 비싼 가격 때문에 윗옷만 사고, 스타킹으로 대신하는 모습은 삶의 절박함과 적응력을 드러냅니다. 갈치다방과 해녀들의 삶이 교차하며,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여성들은 늘 생존을 위해 몸과 노동을 내어놓아야 했음을 시사합니다. 마지막 구절은 그러한 삶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담담한 태도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