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선을 잘게 쪼아대는 고상한 쥐는 언제쯤 허기를 달랠까
권기만 - 2023년 겨울호
2025-03-01
내 시선을 잘게 쪼아대는 고상한 쥐는 언제쯤 허기를 달랠까
권기만
방울뱀이 언제 발목을 깨물지 모르겠어요 기계가 멈췄나요
메마른 돌멩이로 구르는 시련은 예외지대가 없군요
눈 밑에 기름이 묻힌 채 바깥으로 쏟아지는 사람들
축 처진 어깨가 무겁다면 철골 시멘트 바닥에서 잠을 자다 깨어서입니다
순식간에 하늘을 점령해버리는 모래폭풍 같은 찌라시
머리와 어깨도 돌이나 모래와 사촌지간입니다
매립장에 버릴 수 없는 의자가 공터에서 빌딩이 되어 있군요
뒤척이면 AI가 쏟아지는 꿈속, 잠에서 깨어나면 사막입니다
아침 햇살에서 추출한 안구 정화 수정액체를 모니터에 찔끔 쏟았나요
복제된 금요일의 사내가 마지막 자판 키를 두드립니다
문밖에 서면 요철이 되는 사람들이 떼 지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습니다
중력 회로를 굴리는 영원의 태엽을 찾았다구요 어둠을 국자로 퍼 나르는 밤의
서식지가 커졌군요 습관성 구직자가 되었다는 건 삭은 수초로 목을 죄는 외눈박이
물고기가 되었다는 거군요 그나마 봄이 가까워지고 있어 다행입니다
공중에 떠오르는 막대풍선 하나 힘껏 불어놓으면 비가 되는 물고기를 따라가세요
실직 후에 화성에서 잠을 깼다면 목성에 도착할 때까지 더 자라는 기별입니다
목성은 본능을 질량으로 여기는 회전력에서 허공의 여백입니다
드디어 눈치챘군요 자유의지를 가진 영혼이 유성처럼 사라지는걸
광속으로 내달려 미래까지 달려본 몸은 참으로 오래된 것입니다
지구는 온기를 가진 식물이지만 염기성으로 인해 생의 연애사는 느리게 닿습니다
별들의 어깨 파동을 피부로 느껴 다가섰다면 키스는 선물이죠
유일한 승객인 입술이 내 몸 둘레를 백 광년째 돌고 있는 게 보이시나요
해안이 된 당신 눈 속에 정박하는 묵직해진 낡은 폐선이 남은 시간입니다
새들은 회색 날개를 기워 입은 인간이고 이별은 어디에서나 보이는 별이 되지요
99번 선착장에서 행성 여객선을 타고 여름 휴양지로 떠나간 사람은
인간을 배양 숙주로 삼킨 후에 조류가 된 휴머노이드입니다
떠나지 않는 삶을 꿈꾸는군요 반드시 성공하기를 빌겠습니다
등 푸른 물고기가 전생을 찾아 당신을 헤엄친 푸른 밤을 봤군요
기억을 차려 놓은 요단강 천변의 식탁에 앉은 후엔 움직일 수 없습니다
31세기에 불시착한 은하의 변두리에서 사람의 귀는 아직 자라고 있습니다
한 호흡 푸른 생명을 깨워 접신불가침 영역에서 눈을 떠도 인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항아리 속 고요로 조류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는 인어 족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명상에 돌을 떨구면 얼마쯤 깊어지는 사람들
이슬에 실려 떠내려온 여자가 아내가 될 거라고 예언하네요
골목 모퉁이가 달이 되는 지점에서 개 짖는 소리에 놀란 별의 관자놀이에
폭풍이 고이는 계절, 지구는 이제 검은빛이 흐르는 운하입니다
불모의 행성에서 빛을 채집하려는 사람들로 성한 곳이 없습니다
천리향의 회전반경에 접어든 꿈이 뿌리 내릴 곳이 없습니다
태초를 낳은 어둠보다 깊숙한 술병 속에 잠겨서 보았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천변에는 웅덩이보다 깊어진 사랑이 기적처럼 걸어가고 있습니다
보이나요 여자의 전두엽엔 아직 국화밭이 있습니다

2012년 <시산맥> 등단. 시집 『발 달린 벌』이 있음.
AI 해설
이 시는 현대 사회의 단절과 혼란, 그리고 우주적 상상력이 결합된 독특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계적이고 삭막한 현실 속에서 인간은 방향을 잃고 부유하며, 실직과 소외,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유를 갈망합니다. 또한, 미래와 우주의 시간 개념이 뒤섞이며,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과 미지의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랑과 온기, 자연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암시하며, 희미한 희망을 붙들려는 시인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시는 인간의 실존적 방황과 끝없는 탐색을 깊이 있게 형상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