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앵두에서 나온다

수피아 - 2023년 겨울호

2025-03-01

 

 

 

 

나는 앵두에서 나온다

 

 

수피아

 

 

가끔은 집에서 집이 아닌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문을 닫은 것인지, 문을 연 것인지 헷갈린다. 네가 이곳이 아닌 그곳으로 간 뒤에 더 그렇다.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어쩌면 문을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밤 산책을 나서면 도시의 아파트에서 작은 공간들이 빛을 내며 붉은 앵두처럼 붙어 있다. 문을 열고 큰 세계로 들어갈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앵두에서 나온다. 길이 북적인다.

 

수많은 작은 세계의 공간으로 채우고 또 채워도 이 세계는 다 채워지지 않는가 보다. 길 건너에는 공간을 채워 넣느라 “00구역 재개발 지역”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걸핏하면 봄이 되고 나무는 향 가득한 눈이 깊고 하얀 셔츠를 입은 목련꽃을 전령처럼 밖으로 내어 보낸다. 알 수 없는 그곳에서 꽃이 이 세계에 들어올 때처럼 나도 한 번 나무로 들어가 이 세계로 나와 보고 싶어진다. 볼 수 없는 너를 오래 보고 싶은 밤이다.

 

꽃이 드나드는 곳을 찾으려고 나무를 보지만 나무로 들어가는 문은 보이지 않고, 꽃만 자꾸 튀어나온다. 이상한 꿈속처럼 꽃눈을 맞으며 너는 봄에만 열리는 문을 가진 꽃을 지나가고 나는 나의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 불을 켠다.

 

네게 보이니, 내 세계에 앵두 열리는 것이

 

 

* 2023년 3월 27일 28살의 나이에 꽃처럼 세상을 뜬 아들을 그리며

 

 

 

 

 

 

 

수피아 시인

2007년 <시안> 등단. 시집. 『은유의 잠』이 있음.

 

 

 

 

AI 해설

 

 

이 시는 세계와 세계 사이의 경계를 문과 앵두에 빗대어 표현하며,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작은 공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도시의 풍경은 수많은 개인의 세계를 상징하며, 사람들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드나듭니다. 떠난 이는 마치 봄에만 열리는 문을 통해 사라진 꽃처럼 닿을 수 없는 곳에 있고, 화자는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며 머무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나무에는 들어가는 문이 보이지 않고, 꽃만이 계속 피어나듯, 그와의 연결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세계에 앵두가 열리는 모습을 보이며, 그리운 존재를 향한 조용한 메시지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