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없는 미래
김명기 - 2023년 겨울호
2025-03-01
미래 없는 미래
김명기
절정의 한여름 낮 함께 일하는
어린 동료들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나눈다
최저시급 시장에 발을 들인 앳된 노동자들과
시급보다 비싼 커피를 마신다
비정규라는 말같이 어두운 커피 속
반짝이며 녹아내리는 얼음 같은 희망을
알려줄 수도 없는 어른이 낯 뜨겁게
시원한 커피 몇 잔으로 체면을 치른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분연한 마음이 일어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비굴함을 모를 리 없고
기약 없는 날을 저당 잡히고 살아보겠다고
뙤약볕 아래 선 고단함을 모른 척 할 수 없어
가차 없이 잘려나가는 삶 속으로 무모하게
가담한 이들과 보잘것없는 시급을 나누어 마신다
사랑과 거처와 막연한 미래에 대해 몇 번이고 꺾일
풋내나는 이야기를 무능하게 흘려들으며 세상에
황홀한 자비는 없다고 무자비한 위로도 하지 못한다
바닥을 드러낸 연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언젠가 세상에 없을 나보다 더 늙은 체념들의
비정한 여름날이 떠올랐지만 끝내 말하지 못할
입을 다물기 위해 이가 시리도록 남은 얼음을 씹으며
장렬했던 한때조차 사라진 미래를 생각한다
2005년 <시평> 등단. 시집 『북평장날 만난 체게바라』 『종점식당』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등이 있음. 고산문학대상, 만해문학상 수상.
AI 해설
이 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씁쓸한 단상을 담고 있습니다.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어린 동료들과 함께 시급보다 비싼 커피를 나누는 장면은 삶의 아이러니를 상징합니다. 희망이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노동자들의 미래도 쉽게 보장되지 않으며, 어른인 화자는 이에 대해 어떤 위로도 건네지 못한 채 체념할 뿐입니다. 결국, 바닥을 드러낸 커피처럼 한때 뜨거웠던 청춘도 사라지고, 남은 것은 차갑고 비정한 현실뿐임을 시인은 담담하게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