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안현미 - 2023년 겨울호
2025-03-01
대추
안현미
주인은 병이 깊은지 가을이 깊어 가도록 앞집 대추나무는 빨간 대추들을 달고 있다
가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대추나무를 바라보며 여자는 방범창 안에서 생각한다
어디로도 가지 않으면서 스스로 빛나는 대추들, 이라고
주인은 병이 깊은지 방범창 밖 대추나무엔 빨간 대추들이 매달려 있다
어디로도 갈 수 있으면서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방범창 안 여자가
대추들처럼 매달려 있다
겨울이 오면 떨어질 대추들처럼
삶에 매달려 있다
안현미 시인
2001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곰곰』『이별의 재구성』『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깊은 일』이 있음. 신동엽문학상 수상.
AI 해설
이 시는 대추나무에 매달린 붉은 대추를 통해 삶의 고독과 존재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병든 주인과 방범창 안의 여자는 각자의 이유로 갇혀 있으며, 빛나는 대추처럼 어디에도 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대추가 결국 겨울이 오면 떨어지듯, 인간도 삶에 매달린 채 언젠가는 놓일 운명을 지닌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대추와 여자는 서로 닮아 있으며, 이는 인간의 덧없는 삶과 내면의 쓸쓸함을 더욱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