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드나무가 좋아서

이승희 - 2023년 겨울호

2025-03-01

 

 

 

 

나는 버드나무가 좋아서

 

 

 이승희

 

 

 

버드나무에

물고기 한 마리

물고기 두 마리

잎잎마다 살게 하였습니다

 

가지마다 수십 마리의 물고기들

차마 다하지 못한 말처럼

바람 불면

차곡차곡

흔들립니다

 

바람은 자꾸 아픈 마음을 데려와

함께 살라고 합니다

나는 낮잠처럼

물고기 한 마리 허공에 놓아주고

물속으로 놓여난 물고기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먼지 냄새가 오면 소나기가 강을 건너오고 아이들은 소나기를 피해 달리며 자랐습니다 구름보다 크고 태풍보다 빨랐습니다 그래도 젖는 건 아이들이었습니다 젖은 아이들을 한 팔로 안아주면 태몽처럼 당신이 그리웠습니다 아이들은 오늘도 물고기를 안고 잠들었습니다)

 

그래도 찬란합니다

무엇으로든 빛납니다

무엇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봅니다

 

내가 사랑한 귀신들에게 방 하나씩 다 내어주고서야

우리가 살 집을 지어봅니다

이제 막 물속으로 잠기려는 잎사귀입니다

 

 

 

 

 

 

 

 

이승희 시인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등이 있음. 전봉건 문학상 수상.

 

 

 

 

AI 해설

 

 

이 시는 버드나무와 물고기를 통해 기억, 상실,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흔들리는 가지마다 자리한 물고기들은 다하지 못한 말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아픈 마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소나기 속에서 자라며, 젖고 흔들리지만 여전히 찬란하게 빛난다. 무엇이 되려 하기보다는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된다는 깨달음이 담겨 있다. 결국, 사랑했던 기억과 상처를 품은 채 새로운 삶의 터전을 조용히 만들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