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울안

김종윤 - 2023년 겨울호

2025-03-01

 

 

 

 

 

 

 

소리의 울안

 

 

김종윤

 

 

 

이제, 맑다고 말할 수 없겠다

(가을밤 풀벌레 소리)

 

이른 아침이면

이팝나무 갈잎처럼 내려온 참새들이 잔디밭에서 풀벌레를 잡는다 콩콩 뛰고 고개를 돌려 갸웃갸웃 살피면서 부리는 단호하게! 이슬 젖은 풀벌레들이 숨 가쁘게 뛰고 날고 몸을 숨기지만 아침 참새 식욕은 부처 손바닥, 호천무극昊天無極이다

 

허리 굽은 소나무들

기우뚱 서성이는 잔디 정원은 등재되지 않은 세렝게티 초원이다 몇 마리의 풀벌레가 사라지고 몇 마리가 살아남았는지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다 이곳은 이른 아침부터 해거름 녘까지 괄약근이 풀리지 않는 야전이다

 

가을밤은

풀벌레들이 풀벌레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시간, 살아남은 풀벌레들이 사라진 존재의 빈자리만큼 주파수를 높여 공명의 씨실과 날실을 엮는다 저 치열한 생존의 목청을 맑다고 말할 수 없겠다

 

소리의 울안이 장엄하다

 

 

 

 

 

 

김종윤 시인

1994년 시집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금강 천리 길』 『기술교사의 학교일기』 『저녁이 지나가는 길에 서 있었다』 등이 있음. 대전문학상, 한금산 문학상 등 수상.

 

 

 

 

AI 해설

 

 

이 시는 가을밤 풀벌레 소리를 통해 자연 속 치열한 생존과 그 속의 허무함을 담아낸다. 이른 아침, 참새들은 단호하게 풀벌레들을 사냥하며, 그 과정은 기록되지 않는 치열한 생존의 전장과 같다. 밤이 되면 살아남은 풀벌레들은 사라진 존재들을 대신하듯 더욱 크게 울음소리를 높이며 공명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소리를 단순히 "맑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생존의 투쟁과 소멸의 흔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의 소리는 장엄한 울림 속에서 삶과 죽음의 순환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