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살

조현석 - 2023년 겨울호

2025-03-06

 

 

 

 

따가운 햇살

 

 

조현석

 

 

 

잠결이었다 열두 가구 공동 수돗가에서 빨래하던

어머니와 옆집 신경질아줌마가 꾀잠에 빠진 나를

갑자기 대화에 등장시켰다

 

대견하시겠네요, 뭘요 저 골칫덩어리,

그래도 군대까지 갔다 왔는데,

에고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새벽에나 들어오고

집구석에서는 자는 등짝밖에 볼 수 없어요,

하긴 새벽에 담 넘어 들어올 땐 좀 겁나요 혹시 하고,

그것뿐이면 말도 안 해요 용돈 한 푼 준 적 없는데

날마다 고주망태고 그놈의 책은 방 안 한가득인데

꼭 챙겨오는 것 보면 돈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방 안 가득 곰팡이내 고약한 담뱃진내 골치 아파요,

그래도 사낸데 얼마간 놀다가 어디라도 나가겠지요,

하긴 장남이라 믿지만 사내놈 하는 일이 여엉∼,

저리 큰아들 있으니 좋죠 아직 쌈질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우리 아들놈보다 나은 편이죠,

 

눈부신 대낮으로 가는 정오

설핏 든 잠에서 깨어나 벌거벗기운 채

수돗가 한복판 붉은 고무다라이 안에 던져졌다

등짝에 꽂히는 따가운 햇살, 햇살, 햇살

 

 

 

 

 

 

 

조현석 시인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등단. 시집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불법, …체류자』『울다, 염소』 『검은 눈 자작나무』『차마고도 외전(外傳)』 등이 있음. 현재 도서출판 북인 대표.

 

 

 

 

AI 해설

 

 

이 시는 어머니와 이웃의 대화를 통해 화자의 삶과 존재를 간접적으로 조명한다. 화자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골칫덩어리’로 묘사되며, 그의 삶은 술과 책, 불규칙한 생활로 가득 차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걱정하면서도 체념한 듯 이야기하고, 화자는 이 모든 말을 듣는 듯 마치 ‘벌거벗겨진 채’ 드러난 자신을 자각한다. 마지막에 “등짝에 꽂히는 따가운 햇살”은 현실의 냉혹함과 부끄러움, 혹은 깨달음의 순간을 상징한다. 시는 한 개인의 삶을 가족과 사회의 시선 속에서 섬세하게 그려내며, 현실과 꿈, 자각과 무력감이 교차하는 순간을 강렬하게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