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특집

시인수첩

2025-05-16

시인수첩웹진 2025년 여름 디카시 특집 (평론)

 

 

디카시 문예운동 21년 어디까지 왔나

 

2004년 경남 고성을 중심으로 디카시 지역문예운동이 펼쳐져서 올해 21주년을 맞았다. K- 리터러처 디카시는 디지털 시대의 최적화된 새로운 서정양식으로 자리잡아 근자에는 한국을 넘어 한글과 한국문화를 알리는 글로벌 문화콘텐츠 역할까지 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디카시 21년의 성과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서정양식으로서의 시학적 특성을 살펴보고 본격문학으로서의 디카시의 위의를 조명한다.

 

 

 

디카시 문예운동 21년의 성과와 시학적 특성

이상옥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의 디카의 합성어로 신조어이다. 기술과 예술이 융합하는 아트테크 현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필자는 200442일부터 2달간 디지털 한국문학도서관에 디카시라는 신조어로 50편을 연재하고 그해 9월 김충규 시인이 주재하던 문학의 전당 시인선 7번으로 디카시집 고성 가도를 출간했다. 당시 필자는 창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 디지털 시대에 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개인적 모색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곧바로 경남 고성을 중심으로 디카시 지역문예운동이 지속적으로 펼쳐졌다. 올해는 디카시 문예운동 21주년을 맞는다. 현재 디카시는 디지털 시대 최적화된 새로운 시로 본격문학이면서도 프로슈머들의 생활문학으로 널리 확산해 있고 해외로도 한글과 한국문화를 알리는 K-리터러처로써 글로벌문화콘테츠로까지 기능하고 있다. 디카시는 2016년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문학용어로 등재된 이후 네이버 시사용어사전, 인문학용어대사전 등에도 수록됐다. 2018년부터는 중고교 교과서에도 디카시 작품이 수록되기 시작했고 20196월 전국모의고사 고2 국어 시험문항에 디카시 창작 관련 지문 제시형 문제로도 출제됐다.

디카시 문예운동은 온오프라인을 걸쳐 빠르게 진행됐다. 디카시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 다음 카페 <디카시 마니아>2004917일에 개설하고 2년 후인 2006년 무크 디카마니아도 창간했다. 2007년에는 반년간 디카, 그리고 2015년부터는 계간 디카로 발전해 2025년 봄호로 통권 53호를 발간하였다. 21년의 역사를 지니는 카페 <디카시 마니아>는 회원 2,228명으로 현재도 디카시 창작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경남고성국제디카시페스티벌을 고성군의 지원으로 매년 개최해 올해는 제18회 경남고성국제디카시페스티벌이 열리게 된다. 이 외에도 이병주하동디카시공전, 황순원디카시공모전, 오장환디카시신인문학상공모전, 이형기디카시신인문학상공모전, 창원세계디카시페스티벌 등 다양한 디카시 관련 콘텐츠가 펼쳐지고 있다.

디카시 지역문예운동은 필자를 비롯하여 김종회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최광임 한국디카시인협회 집행위원장, 천융희 계간 디카시부주간, 이기영 한국디카시인협회 사무총장 등과 함께 한국디카시연구소(전신은 2010년 설립한 디카시문화콘텐츠연구회)가 주도해 왔다. 2016년부터 디카시가 한국을 넘어 해외로까지 확산하면서 디카시 문예운동을 한국디카시연구소가 주도하기에는 벅차게 됐다. 한국디카시연구소는 문화기획으로 2019년 한국디카시인협회 발기인 대회를 열고 20201016일 오후 2시 창신대학교 문덕수문학관에서 한국디카시인협회와 한국디카시연구소 공동 주최로 제1회 디카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함으로써 한국디카시인협회가 본격 출범했다. 디카시 발원 21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디카시인협회는 경남디카시인협회, 부산디카시인협회, 울산디카시인협회 등 국내 8개 지부 중랑디카시인협회, 대구디카시인협회, 통영디카시인협회 등 국내 9개 지회, 미국 뉴욕 지부, 영국 런던 지부, 중국 청도 지부 등 해외 20개 지부의 글로벌 단체로 성장했다. 지금 디카시 문예운동은 한국디카시인협회와 한국디카시연구소 양 기관이 중심이 돼 이끌어가고 있다. 양 기관 외에도 자생적인 디카시 단체나 동인 모임들도 많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정유지 시인이 경남정보대학교에 디카시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문예창작과를 2024년 개설해서 디카시가 상아탑에서도 수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디카시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공적 장르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특정 단체나 어느 일방의 전유물일 수 없다.

디카시는 제2의 구텐베르크 혁명인 디지털 혁명의 산물이다. 인류 역사에서 미디어의 혁신만큼 사회와 문화 예술 전반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 있을까 싶다. 담화 양식인 시도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진화를 거듭해 왔다. 주지하듯 구두 커뮤니케이션 시대는 텍스트(text)가 없었기 때문에 시도 주로 구전을 통해 전해졌으므로 가창되거나 낭송되는 형태가 주된 양식이었다. 이러한 형태의 시는 기억력과 구두 전달에 의존해야 해서 운문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근대사회는 인쇄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한다. 구텐베르크가 15세기 최초로 금속활판 인쇄술을 발명해 인쇄 미디어 시대를 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상형 문자,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쐐기문자를 사용했고,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과 중국의 황허강 유역에서도 문자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기원전 3천 년 전의 일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문자를 사용해 왔지만 점토판, 파피루스, 양피지 등에 글자를 쓰다가 획기적으로 종이를 발명하고, 목판인쇄술 등을 활용해서 구텐베르크 이전에도 인쇄 미디어가 14세기에 유럽에도 이미 부분적으로 도입이 됐다. 그러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인쇄술 혁신이 이루어졌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구전문화에서 문자문화로 본격 이행이 이뤄지게 함으로써 시도 오늘의 문자시의 위상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의 경우는 개화기 이전만 하더라도 시는 가창 되면서 시가 음악에서 완전히 독립되지 못했다. 신체시는 신문학 운동 초창기의 새로운 형식의 시이다. 최남선이 1908년에 발표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최초의 신체시로 일컬어진다. 신체시는 형태적인 면에서도 정형적인 율문성에서 벗어나 산문성을 추구하며, 이전의 가창 되던 시가와 다른 시형식이었다. 신체시는 고시가의 율문적인 정형성에서 벗어나 자율화한 산문적인 속성으로 변하는 현대 자유시로서의 문자시로 이행하는 교량적 역할을 했다. 개화기 이후 신문, 잡지 등의 인쇄 미디어의 출현으로 기존의 시가에서 노래()가 떨어져 나가고 문자시로서의 새로운 형태의 시가 주류로 나타났다.

2의 구텐베르크 혁명인 디지털 멀티미디어 시대가 열리면서 커뮤니케이션도 읽기 쓰기의 문식성에서 모바일이나 컴퓨터 스크린에서 문자, 음악, 이미지 등 복합 양식 텍스트를 읽고 생산해 내는 능력인 복합문식성으로 중심축이 이동됐다. 그것은 복합 양식 리터러시 능력을 지칭하는 것이다.

디카시는 영상기호와 문자기호를 하나의 텍스트로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복합 양식 리터러시의 멀티언어예술로서 새로운 언어관 위에서 출현했다. 2006년 무크지 디카시 마니아창간 기념 대담에서 김열규 교수도 디카시가 문자언어를 넘어 새로운 언어관의 변화 위에 서 있는 한 증표라 보았다.

 

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소쉬르는 예전에 언어학 개론 분야에서 가장 경외감을 가지고 공부했던 사람입니다. 프로이트,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20세기를 만들어낸 현대 문화의 아버지입니다만, 그가 쓴 일반언어학강의에서 그는 이미 기호론의 세계가 올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언어 시대가 지워져 가고 기호의 시대가 온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그 기호가 언어를 포함한다는 겁니다. 언어를 일부로 하고 자연도, 인간의 행동도 언어가 된다는 겁니다. 결국 소쉬르는 언어를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소쉬르는 또 다른 속성을 가진 언어를 발견해내고, 그러한 모든 것에게 기호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텍스트라는 것은 종래, 교재 즉 책이라는 뜻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대 바람이 불어서 감이 떨어지고, 낙엽이 지고, 그리고 그 위에 벌이 앉았다고 할 때, 낙엽과 감, 벌이 모두 훌륭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지요. 언어도 기호에 들어가는 것이고 세계가 전부 텍스트입니다.

따라서 이 선생의 디카시라는 것은 이런 새로운 언어관의 변화 위에 서 있는 한 증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디카시의 새로운 언어관은 기호학적 관점에서도 텍스트의 범주 확장이다. 디카시는 기존의 전통적 언어를 대표하는 문자와 기호성을 대표하는 영상기호를 하나의 텍스트로 표현하는 영상과 시의 하이브리드 문학 혹은 퓨전 문학이면서 기호학적 관점에서 기호시고 매체언어예술로서 멀티언어예술이다.

 

디카시가 출현한 2004년은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의 창업과 함께 창립함으로써 SNS 시대가 도래하는 해다. 2007년은 최초의 디카시론집인 졸저 디카시를 말한다를 출간했는데, 같은 해에 스티브 잡스는 손안의 컴퓨터인 모바일 아이폰을 출시했다. 디카시는 SNS와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양식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감흥을 포착해서 스마트폰 내장 디카로 찍고 짧게 언술해서 영상기호와 문자기호를 하나의 텍스로 SNS를 활용 실시간 쌍방 소통하는 극순간 멀티언어예술로 디지털 시대 최적화된 시양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이 완벽하게 구축된 것이다.

 

디카시의 양식적 특성은 첫째 서정적 세계관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김준오가 바슐라르의 말을 빌려 몽상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누가 말하는 것인가, 그인가, 세계인가?”라는 정도의 경지, 자아와 세계의 구분이 없는 동일성이 서정시의 시 정신이고 세계관이라고 지적했지만 현대시는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보다는 대립과 갈등이 지배적으로 드러난다. 90년대 이후 탈중심주의적 경향을 반영하며 전통 서정이 추구했던 동일성의 서정적 비전은 균열을 보인다.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순간 포착하여 짧은 언술로 표현하는 방식이므로 대상과의 갈등이나 분열보다는 동일성을 확보하며 서정시의 근원적 시 정신에로의 회귀가 우세한 국면이다. 디카시는 사물의 말을 대언하는 에이전트로서의 시인의 관점도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익은 감이 담장으로

흘러내리는 걸

손으로 쓱쓱

펴 발라 보았더니 -조용미, 미장

 

 

 

 

 

 

이 디카시의 영상기호는 담장을 넘어오는 감나무의 익은 감이 초점화되고 담장 벽은 감빛으로 칠해져 있다. 화자는 이 장면을 보고 흘러내리는 감을 손을 쓱쓱 손으로 펴 발라 보며 스스로 미장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 담장 벽이 아름답게 채색된 것을 감을 질료로 화자가 미장이 돼 칠한 것으로 생각한다. 시인과 미장을 동일시하고 감과 페인트를 동일시한 것은 현실공간에서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고 미장은 벽에 시멘트를 발라 단장하는 사람으로서 전혀 다른 존재인도, “몽상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누가 말하는 것인가, 그인가, 세계인가?”라는 정도로 자아와 대상이나 혹은 대상과 대상간에 있어 거리 결핍을 보인다. 이것은 물활론적 세계로 환치되며 자아와 세계의 구분이 없는 서정적 동일성의 비전이 실현된 것이다.

둘째 디카시는 극순간 양식이라는 점이다. 김준오가 서정시가 순간의 장르로 규정되는 것은 서정시가 짧아야 한다는 결정적인 근거다라고 말하며 서정시의 본질적 시제가 현재가 되는 것도 서정시가 생의 순간적 파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디카시의 본질도 날시성을 전제로 극순간성’, ‘극사실성’, ‘극현장성’, ‘극서정성이라는 것도 서정시가 순간의 장르라는 것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오늘의 현대시가 복잡다단한 생을 반영하다 보니, 전통적 서정적 비전을 상실하고 시의 길이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디카시는 극순간의 양식으로서 문자의 길이를 5행 이내로 제한하고자 하는 것도 실시간 쌍방향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차가운 입술이 말했다

둘러보면 누군가

다 만지고 간 자리다

류경무, 안부

 

 

 

 

 

 

 

류시화가 엮은 하이쿠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제목이 환기하듯 하이쿠는 한 줄의 시로 불가사의한 이 지상에서의 삶을 표현하고 우주의 신비를 담아낸다. 극순간 양식의 디카시는 문자 외에 영상기호의 멀티언어로써 표현하기에 디카시의 언술이 하이쿠보다 길어질 이유도 없다. 류경무의 디카시 안부는 바위의 입술을 빌려 살짝 한두 줄 읊조리니, 천둥소리

같은 큰 울림이 극순간성을 극대화한다. 카시는 스마트폰 디카로 시적 감흥을 찍고 순간언술을 통해 순간의 감정과 풍경을 담아내는 극순간 양식으로서 서정성이 강화된다.

셋째 디카시의 멀티텍스트성이다.

 

이제 내 몸 부수어 너에게로 간다

이상옥, 숙명

 

 

 

 

 

 

 

 

 

 

문덕수는 디카시와 하이퍼시와의 관련성(시문학201210월호)에서 이상옥의 디카시 숙명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서 디카시가 기호시로서 영상과 언어의 관계가 접근, 영향, 융합 등의 상생(相生) 공발(共發)의 관계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정복하거나 먹어버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고, 어디까지 상생공존의 발전 관계를 맺고 더 높은 하나의 통합세계를 이루는 것으로 보며, 여기에도 형이하적 관계와 형이상적 관계가 엄존해 있는 것으로 본다. 디카시의 영상과 문자의 텍스트성은 1차 기호체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를 초월하는 위상으로 형이상학적 단계로 상승하며, 영상과 문자의 1차 기호체계를 넘어 높은 의의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는 디카시의 영상기호와 문자기호의 멀티텍스트성이 1차 기호체계인 물질세계의 의미에서 2차 기호체계인 형이상의 의의 단계에 도달함으로써 미학적으로 통합, 형성 완료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감흥을 스마트폰 내장 디카로 찍고 짧게 언술해서 영상기호와 문자기호를 하나의 텍스트로 SNS를 활용해 소통하는 극순간 멀티언어예술이다. 디카시는 디지털 환경 자체를 시쓰기의 도구로 활용하며 서정적 세계관, 극순간 양식, 멀티텍스트성을 정체성으로 하는 디지털 시대 최적화된 서정양식으로써 자리 잡아 순간포착, 순간언술, 순간소통하며 디지털 시대 정신을 가장 탁월하게 반영한다.

시는 언어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추상성과 불완전성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어 왔다.

동양의 문사적 전통은 시, , 화를 함께 상보적으로 즐기며 이 셋이 모두 뛰어난 사람을 시서화 삼절이라 불렀다. 소동파가 왕유의 시와 그림을 평가하여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 즉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한 것은 시와 그림은 본래 하나라는 시화본일률적 관점이다. 동양시학적 관점에서 문사가 시로서 자신의 감정을 읊거나 그림으로 그려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디카시는 제화시적 관점을 계승한다. 제화시는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시를 직접 쓴 자제시와 그림에 타인이 쓴 시를 타제시로 구분된다. 물론 디카시는 자제시와 관련이 있다. 서양시학적 전통에서는 그리스 시인들이 시각적 효과를 위해 시에 외적 형태를 부여하려 한 것을 필두로 언어의 추상성을 극복하려 한 연원은 장구하다. 프랑스의 아폴리네르, 영국의 조지 허버트, 미국의 에즈라 파운드 같은 시인들도 시에 형태적인 것을 강조했다. 구체시의 본격적 개념은 20세기 스위스의 시인 E. 곰링거가 미술의 구체예술을 원용하여 단어와 문자들의 수열이나 새로운 구조적 방법을 통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질서단위라고 제시하면서부터이고 독일어 문화권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어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현상이다.

브레히트는 1955년 신문이나 잡지에서 사진을 오려 4행 시를 써서 결합하는 방식으로 사진시집 전쟁교본을 출간했다. 브레히트가 신문이나 잡지의 사진이 정치적 목적으로 메시지의 왜곡된 것을 폭로하고 바로잡기 위해 사진의 진실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결국 브레히트의 사진시는 나치 정권의 위악성을 폭로하기 위해 사진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한 사진 대상 짧은 시 쓰기라 할 것이다.

1980년대 황지우 시인 같은 경우 형태시나 브레히트 류의 사진시의 영향 하에 전통 시형식의 해체와 전복을 시도하며 사진을 시에 도입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 시가 영상매체와 만나면서 사진, 그림, 만화, 플래시, 동영상 등과 상호 텍스트적 양상으로 더욱 발전하였다.

21세기 디지털 환경 자체를 시쓰기의 도구를 활용한 디지털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디카시는 구체시나 브레히트 류의 사진시처럼 사진을 제재로 시에 도입한 것과는 달리 사진기호와 문자기호를 멀티언어로 표현함으로써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된 새로운 서정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디카시는 완성된 시에 어울리는 사진을 엮어 온라인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포토포엠과도 차별화된다. 포토포엠은 완성된 시와 어울리는 사진을 일시적으로 조합하는 것으로 시와 사진은 각각 독립성을 지닌다. 디카시는 영상기호가 문자기호가 둘이 하나의 텍스트로 완결성을 확보한다. 디카시의 문자기호는 그 자체로는 독립된 시가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디카시는 여타의 사진시나 포토포엠과는 다른 서정양식임이 드러난다.(이 글은 필자가 디카시전문 온라인 커뮤니티 다음 카페 <디카시마니아>20231123일부터 202433일까지 연재한 개정증보판 디카시창작입문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디카시창작지도사 민간자격등록의 의미와 시행 1년의 성과

 

최광임(한국디카시인협회 부회장&집행위원장)

 

1.

2004년 디카시 발원 이후, 계간 디카시를 기반으로 시인들의 디카시와 디카시 평론들이 축적되어 왔다. 한국디카시인협회에서는 디카시 관련 학술 세미나를 주최해왔고, 그 밖에 연구자들의 디카시를 주제로 한 학위 논문과 연구 논문들이 축적되고 있다. 또한 한국디카시인협회와 한국디카시연구소에서 주관 혹은 주최하는 공모전 외에도 도, , , 구 별로 시행하는 지자체의 디카시 공모전과 기관, 단체가 시행하는 공모전 등을 통해서 디카시 창작이 폭발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렇듯 디카시는 전방위적 문예 운동에 힘입어 본격 문학이자 동시에 생활 문학으로 널리 자리매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디카시(서동균 시인의 디카시 )2018년 검정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미래엔)와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천재교육)에 수록되었다. 2019년도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창비)에 황순원디카시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탄 윤예진 학생의 디카시 기다림이 실렸다. 이어서 2019학년도 6월 고2 전국연합학력평가에 공광규 시인의 디카시 수련잎 초등학생을 텍스트로 3문항이 출제되기도 했다. 2025년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미래엔)에 고 서장원 디카시인의 디카시 봄비,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미래엔)에 이유상 독자의 디카시 가족사진이 게재되었다. 또한 중고등학교에서 자유학기제, 방과후수업, 문학동아리, 도서관 등에서 선택적으로 디카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2024년에는 한국디카시인협회에서 디카시창작지도사민간자격을 등록하였다. 자격의 등급은 4/3/2/1급으로 세분화하고 디카시를 창작하고자 하는 대상, 디카시 창작을 가르칠 수 있는 대상으로 등급을 분류하였다. 매주 1회 수업을 시행할 경우에 1급까지 총 48(각 급별 12)가 소요되며, 대학 학기제로 계산하면 3학기 이상에 해당하는 장기간의 과정이다. 한국디카시인협회의 디카시창작지도사 민간자격 취득은 디카시가 교과서에 게재된 것과 함께 본격 문학으로 자리매김하는데 또 하나의 공적 기반이 되었다.

예술의 한 장르가 새로이 정착하려면 반드시 창작과 그에 따른 이론이 정립되어야 하며 대중적/전문적 창작 또는 향유 주체가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그것은 일시적 유행에 그치고 말 공산이 크다. 한국 현대시문학사에서 1925년 결성되었던 카프문학(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카프문학은 내용과 형식 관련의 갈등도 있었지만, 이론에 부합하는 창작활동이 활발하지 않아서 하나의 커다란 문예 운동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카프문학은 내용에 걸맞는 형식을 담보하지 못함으로써 대중에게 외면받았다. 이는 카프문학 운동이 동력을 잃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어떤 새로운 문학 장르도 카프문학과 같은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디카시 발원 20년이 넘은 지금 디카시는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이론과 창작에서의 성과 그리고 창작 주체와 향유 주체의 확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디카시를 독립된 문학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일, 창작자의 급진적 확산에 따라 엇나간 디카시 정체성(사진시가 많은 현실)을 바로잡는 일 등이 디카시가 당면한 과제이다. 본 글에서는 디카시창작지도사 민간자격 등록이 이와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1) 한국디카시인협회는 디카시창작지도사 민간자격 등록 신청을 20239월에 시작하였으나, 유래가 없는 장르의 자격 과정이라는 점, 그러므로 자격증 관리 주무 부처를 어디로 정해야 할지에 따른 관리기관 이관, 이에 따른 자격 요건 검정 방법 문제 등으로 평균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2) 위의 민간자격등록은 한국디카시인협회(이하 협회”)에서 시행하는 디카시창작지도사민간자격검정(이하 검정”)이다.

3) 자격의 종목명은 디카시창작지도사이며 등급은 4, 3, 2, 1이다.

4) 격소지자의 직무내용은 다음과 같다. 디카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한 이미지(영상)5행 이내의 문자 언술을 통합(융합)하여 디카시를 창작할 수 있고 개인 디카시 창작집을 발간할 수 있다. 또한 디카시창작지도사 등급에 따라 대학 평생교육원, 방과후학교, 도서관, 문학관, 문화센터 등 교육·관련 문화시설에서 남녀노소 누구나를 대상으로 디카시 창작지도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5) “검정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시행한다.

6) 등급별 검정과목, 문항 수, 시험시간, 난이도, 평가 요소 등 합격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론 시험시간은 각각 50분씩이며 4, 3급의 합격 점수는 60점이고, 2, 1급의 합격 점수는 70점이다. 이는 최초 등록 과정 때 설정한 규정으로 차후 4, 3급의 검정 규정의 보완이 필요하다.

7) 응시 자격으로는 4, 3, 2, 1급 모두 학력, 연령 제한 없으며, 4급은 디카시 창작 전문 교육기관(한국디카시인협회 인정)에서 12주 교육과정을 수료한 자, 3급은 디카시 창작 전문 교육기관(한국디카시인협회 인정)에서 24주 교육과정을 수료 또는 대학의 문학관련 학과(한국디카시인협회 인정)에서 디카시 창작강의 3학점 이상 이수한 자 또는 등단 작가이면서 4급 자격이 있는 자, 2급은 디카시 창작 전문 교육기관(한국디카시인협회 인정)에서 36주 교육과정을 수료한 자 또는 대학의 문학관련 학과(한국디카시인협회 인정)에서 디카시 창작강의 6학점 이상 이수한 자 또는 등단 작가이면서 3급 자격이 있는 자, 1급은 디카시 창작 전문 교육기관(한국디카시인협회 인정)에서 48주 교육과정을 수료한 자 또는 등단 작가이면서 2급 자격(한국디카시인협회 인정)이 있는 자로 한정한다.

8) 향후, 국가 공인민간자격, 국제 민간자격으로 확대 추진할 수 있다.

9) 현재 디카시창작지도사 과정은 한국디카시인협회와 경남정보대가 MOU를 맺고 경남정보대 평생교육원에서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시행하고 있다.

 

3.

디카시는 어느 문학 장르보다도 창작 주체의 층위가 넓다는 특성이 있다. 디카시는 말 그대로 누구나창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사진을 찍을 줄 알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스마트폰(디지털카메라) 소지자라면 누구나가능하다. 이러한 특성이 디카시 장단점의 양면성이 된다. 장점으로는 이것이 전문 작가와 디카시 마니아들로부터 사랑받는 요인이 되므로 본격 문학과 생활 문학이란 폭넓은 층위를 이룰 수 있다. 동시에 단점으로는 누구나 손쉽게 창작할 수 있으므로 작품의 수준이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디카시의 작품성을 전체적으로 평가절하하는 문제가 야기된다. 이러한 문제와 함께 디카시의 정체성 또한 다음과 같이 여러 양상으로 복잡해진다.

 

1) 디카시는 학습하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장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창작 접근성이 수월하다 할지라도 디카시를 쓰다 보면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간과한 데서 오는 문제이다.

2) 본격 문학은 작품성을 본질로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반면에, 생활 문학은 문학성을 담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저변화 된 듯하다.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문학에 어떤 명칭이 붙는다 할지라도 문학의 본질은 형식을 통한 예술성의 성취라는 점을 간과한 데서 야기된 문제이다.

3) 디카시를 시 장르 중 하위 수준의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디카시는 시가 아니라 디카시이다. 동시도 시가 아니라 동시이듯 디카시 또한 시가 아니고 디카시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4) 디카시 창작 과정은 시창작과 엄연히 다르다. 그러함에도 간혹 시인들조차 디카시 창작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시창작법으로 디카시를 쓴다는 점이다. 디카시는 이미 발아된 시적 대상을 포착하는 것이라면 자유시는 시적 씨앗부터 발아하는 형식을 띈다.

5) 계간 디카시원고 청탁을 하면서 확인하게 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시인이나 디카시 마니아들조차도 여전히 디카시와 사진시를 구분하지 못하고 창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디카시의 문자 언술도 자유시의 언술과 마찬가지로 비의적이며 중층적인 반면, 사진시의 언술은 텍스트화된 사진을 그대로 설명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6) 디카시 확산 속도만큼 사진시가 많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현재 디카시가 당면한 문제 중의 문제라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시인들이 창작하는 디카시, 출간되는 디카시집, 공모전에 우수작품으로 선정되는 디카시까지 문장만으로도 시적 의미를 형성하고 영상은 보조적 역할에 머무는 일종의 사진시가 많은 실정이다. 이는 가장 큰 문제로 디카시의 정체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다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는 생비자의 증가, 디카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질 부족의 강사들에 의해 성행하는 디카시 강의가 한몫 한다.

 

이상과 같이 디카시 확산과 함께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거칠게나마 짚어보았다. 디카시 문예운동을 하는 한국디카시인협회와 한국디카시연구소는 위의 문제들을 보완하는 일에 목하 숙고해 왔다. 그 일환으로 한국디카시인협회가 주관하는 디카시창작지도사민간자격제도를 등록하고 시행하게 된 일은 디카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확산하는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다. 이로써 전국에서 활동하는 디카시창작지도사들에 의해 다음과 같은 양화가 구축될 것이라는 점을 기대할 수 있다.

 

1) 전문 강사를 통해 디카시 이론과 창작법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게 됨으로써 디카시의 정체성이 제대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본다.

2)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강사의 강의를 선호하게 됨으로써 차츰 전문 강사의 디카시 강의가 늘 것으로 본다.

3) 디카시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창작하게 됨으로써 디카시도 생활 문학이든 본격 문학이든 작품성이 높아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4) 좋은 작품을 창작하게 된 프로슈머들의 정서적 만족감이 커지게 되고 삶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

5) 디카시와 사진시를 구분하지 못하고 창작하는 일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4.

202497일 디카시창작지도사 제1기가 4, 3, 2, 1급까지 48주의 과정을 마쳤다. 강의를 수강한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더 좋은 디카시를 쓰기 위하여 48주간의 과정을 이수한 수강자다. 48주 간, 1시간은 디카시 이론뿐만 아니라 인문학 담론과 창작법을 1시간은 매주 디카시를 창작하고 합평하는 수업을 통해 디카시를 쓰고 읽고 공감하는 실력을 키웠다.

 

1)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25년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강자 두 사람의 디카시가 게재되었다.

2) 각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실시하는 개인 창작 지원 부분에 수강자의 디카시집 출간이 다수 선정되었다.

2) 디카시창작지도사 전국 규모 디카시 공모전에 대거 수상자들이 나왔다. ‘대구신문 신춘 디카시 공모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시사불교 신춘문예 디카시 공모에서 대상을, 오륙도신문 신춘문예 디카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미래행복도시 완주 전국 디카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황순원 디카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중랑 서울장미축제 디카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원주시가 주최한 디카시가 만나는 박경리의 세계디카시 공모전에서 최우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우수, 장려에 입선자들은 더욱 많았다.

 

다음으로는 4급부터 1급까지 디카시창작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한 제1기 중, 문화원이나 도서관, 기타 동아리 등에서 시행하는 강의나 특강을 기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경상도

부산 배산도서관(김정숙 시인), 울주옹기종기도서관, 서부종합사회복지관, 울산종갓집도서관(박해경 동시인), 마산희망자활센터, 경남혁신경제개발원, 이나인파워텍(백운옥 디카시인), 밀양시청 찾아가는 문해교실(송문희 시인), 울산 신복도서관(이상미 시인), 울주선바위도서관(이시향 시인), 경남정보대학교 평생교육원(황주은 시인), 산청군청(황재원 디카시인),

2) 서울, 경기

구립신내노인종합복지관, 구로도서관(김경화 디카시인), 용인문화원(류미월 시인), 수원문화재단 디카시(벼리영 시인), 소망교회 시니어 글쓰기(이소영 디카시창작지도사), 평화교회(황주은 시인)

3) 강원

<강원경제신문> 디카시 연재(위점숙 수필가)

4) 해외

미국 캘리포니아 사우스베이 글사랑(이수진 수필가)

 

이상과 같이 디카시창작지도사의 활약을 개괄적으로 정리했다. 사람들은 그간 기존의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했다면,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는 끊임없이 정보를 스스로 생산하고 동시에 소비하는 프로컨슈머적 주체가 될 것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디카시는 문학으로서 또 문화콘텐츠로서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새로운 문화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손색없는 콘텐츠가 된다.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디카시 창작과 비평과 이론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 사이에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디카시가 게재되었다는 사실은 디카시를 창작하고 향유할 차세대를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어서 디카시창작지도사 등록민간자격을 취득했다는 것은 디카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디카시 저변확대에 보다 안정적인 틀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이 모든 것이 디카시 발원 20년의 성과이다. 앞으로 디카시의 과제는 생활 문학으로서든 본격 문학으로서든 작품성 높은 디카시를 창작하여 독립 예술 장르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이 글은 20246월에 창원에서 있었던 디카시 발원 20주년 디카시 학술 심포지움토론문을 보완하고 새 성과를 첨부한 것이다.

 

 

 

디카시 정립의 문학사적 의의 : 정전과 위반 사이에서

 

김석준 문학평론가

 

1

 

시대가 의식을 결정하고 매체가 그 인식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다카시는 하나의 운명이자, 시대가 정초한 역사의 필연적 결과물이다. 왜냐하면 디카시는 헤겔이 역사철학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의 운명이 하나의 사태를 필연적 결과물로 정초하게 만든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카시의 출현은 시대적 이념과 정확하게 대응되는 문화적 생산행위의 결과이다.

개인의 사소한 운동에서 사회 전체의 운동으로 급진화된다는 것은 어떤 시사적 의의를 간직한 문화운동인가? 디카시가 현재의 운동이자, 미래의 운동으로 무한 변주 가능할 때, 이는 어떤 시사적 임무를 간직한 시말운동인가? 엄밀하게 말해서 협소한 문자의 영역 안에서 새로운 예술의 형식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기존의 관행처럼 행해지는 일련의 문학예술의 장르적 범주를 벗어나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늘 동일한 형식의 감옥 안에 갇힌 채 상징의 새로운 탑을 쌓아가는 언어형식의 실험만을 반복적으로 행할 뿐이다.

그런데 디지털시대의 이념을 고스란히 간직한 디카시만큼 극적으로 시대성과 조우하는 문예 양식은 전무후무한 것 같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디지털 기기가 점점 대중화하는 2004년은 문자의 감옥에서 탈주해 새로운 의미의 문학형식이 창조되는 신기원인데, 이는 새로운 시미학이 정립되는 전무후무한 세계사적 사건이다. 뒤샹의 샘이 미술사 전체를 전복하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듯이, 디카시는 언어의 감옥에서 벗어나 활소한 이미지의 상상력을 마음껏 항유할 수 있는 시의 신기원이다.

언어의 숭고함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언어의 한계지평을 가볍게 뛰어넘는 디카시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즉 이미지와 문자의 이종교배를 통해 시대의 이념과 극적으로 조우하는데, 이는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의 새로운 지평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시대의 이념의 결정적인 주체인 알고리즘의 신화, 즉 디지털 미디어는 플라톤 이래 엄격하게 구분했던 실재와 가상 사이의 한계를 모호하게 만든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가상이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것으로 만든 일종의 마나적 주술을 발휘해 가상이 메타적 실재의 역할을 하게 되는 전복을 완성시킨다.

따라서 디지털은 모든 예술적 실천이 가능한 새로운 재현양식일 뿐만 아니라, 인간학 전체를 지배하는 영혼의 기표이자 기의에 다름 아니다. 이와 같이 온 세상이 디지털에 의해 평가·실천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디카시가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성립시킨다.

 

 

2

 

2016년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사전에 디카(Dica-poem)가 명확하게 개념 규정이 되었다는 사실은 디카시운동이 일시적인 하나의 현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학을 준비하는 정전의 운동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문자 예술이 가지는 모든 가치 기준을 일거에 무너트리는 혁명적 사태에 다름 아니다. 디카시의 혁신성은 세상에서 가장 난해하기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나 이상의 오감도시편의 문자적 실험성을 이미지의 역동성으로 가볍게 논파시키는데, 그 까닭은 문자가 아닌 이미지가 시말운동을 이끄는 결정적인 주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전통의 서술기법을 해체시킨 소설과 시의 실험성, 즉 의식의 흐름과 다다이즘이나 초현주의 가 여전히 문자의 범주에 구속되었다는 사실은 21세기를 대표하는 새로운 시형식인 디카시와 커다란 변별점이 존재하는데, 이는 플라톤이 이후 지배해왔던 실재와 가상 사이의 관계를 전복하는 의식의 혁명적 사태이다. 다시 말해서 디카시에 표명된 일련의 테제는 이미지가 언어의 주체, 즉 문자이전의 선험적 전제이다.’

일억 화소가 넘는 초정밀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은 디카시의 미적 기능을 진일보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이미지가 실재보다 더 실재적으로 의식하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의 이미지의 재현기능을 해체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 이미지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나타난 진실과 거짓의 관계를 표상하는 저열한 가상이 아니라, 참된 실재를 표상할 수 있거나 실재의 거짓을 가볍게 논파할 수 있는 메타성을 함의하게 된다.

이미지가 시말 전체를 지배하는 실재의 위치로 고양된다. 다시 말해서 디카시는 플라톤 이후 2500년 지배해왔던 고정관념, 즉 실재와 이미지의 주종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체시키는 것은 물론 이미지의 구상력(Einbildungskraft), 즉 이미지가 진실을 압박하는 실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취미(Geschmack)판단의 가능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일련의 체계와 상상적 지평을 구상력이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디카시의 이미지는 단순한 소재 역할을 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시말운동 전체를 지배하는 주체, 즉 상상적 지평 융합의 보고라 하겠다.

따라서 이미지는 말의 영혼이자, 기의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이상옥 시인을 비조로 한 일련의 디카시운동은 이미지정령을 통해 문학의 공간 전체를 새로운 형식으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는 모리스 블랑쇼가 정초한 문학의 공간, 즉 글쓰기 전체를 회의하게 만드는 혁신적인 운동이다. 어쩌면 디카시는 데리다가 문학의 행위라고 명명한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 사이에 매개된 일련의 관계를 무화시키는 신기원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시인의 의식에 포착된 이미지는 전통적인 의미의 쓰기를 거부하는 사진을 찍는 행위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디카시의 시사적 의의는 전통적인 읽기와 쓰기 관계를 보기(Seeing)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이끌어 문학 행위 전체를 전복하는 데서 비롯한다.

 

3

 

현대시가 새로운 시말길을 찾는다는 것은 신기에 가까운 마법을 부리거나 불가능한 운명의 서사를 만날 때만 비로소 가능하다. 시가 점점 난해해진다. 읽히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시인의 내밀한 의식을 통로를 따라 아주 협소한 언어의 길을 내어놓는다. 시가 독자를 잃고 아카이브에만 쌓인 채 먼지만 풀풀 날린다. 아니 현대의 시들은 운명적으로 내밀한 언어의 길을 따라가다가 스스로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정전에의 의지가 만든 참극이다. 대저 정전이란 무엇인가? 문학의 전당에 한 획을 그은 시말들은 대저 어떤 시의 위의를 간직한 숙명의 전언인가? 첫째도 새로움이고, 둘째도 새로움이다. 시대의 운명을 새로움으로 포장한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적인 운동, 바로 그것이 시의 전당에 놓인 숙명이 테제이다.

더 나아가 수천 년 동안 이루어진 읽고 쓰기의 문학의 행위는 새로움에 또 다른 새로움을 더해 기표와 기의를 전혀 다른 형질의 체제로 구축했는데, 그것이 위반과 정전 사이에 위치한 새로움의 의미이다. 이미 관행처럼 굳어진 정전의 패러다임에 저항하며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추구하게 된다. 따라서 새로 만들어진 새로움은 이내 클리셰가 되어 정전에 위치하고, 다시 그 정전에 저항하는 위반의 행위들이 시의 역사로 구축되었다고 과언이 아니다.

더 이상 시가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된다. 정전을 지향하는 새로움은 점점 난해함을 무기로 자신만의 고유한 시말길을 내어놓지만, 더는 대중 독자에게 사랑받는 시가 되지 못한 채 전혀 읽히지 않는 의미의 기호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어쩌면 디카시가 추구한 일련의 새로움도 현대시의 난독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디카시는 문학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미지가 가진 양력과 부력을 통해서 문자중심적으로 확고했던 정전의 길을 위반하면서,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전혀 다른 형식의 예술 양식이기 때문이다.

시의 죽음이 선언된 시대에 디카시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는 점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아니 역으로 디카시는 시의 부활을 알리는 21세기의 참신한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디카시가 창작된 목적이 대중과 다양한 방식의 소통을 지향하면서 창작된 새로운 형식이기 때문이다.

문학사적 지평, 즉 문자의 감옥 안에 갇힌 채 난독증에 빠진 정전적 의지를 저항과 위반의 원칙으로 고양시키면서, 디카시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시양식으로 점점 자리잡아가고 있다. 아마 전도유망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예상된다. 왜냐하면 디지털 미디어가 온 세상을 지배한 알고리즘의 신화와 함께 디카시는 그 역량을 증폭시켜 현재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급진화해 가는 것은 물론 새로운 정전의 위치를 확고하게 구축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4

 

2004년 고성가도 어디쯤을 떠올려본다. 우연이었다. 순간 새로운 발상이 떠오른다. 아마 이상옥 시인은 무릎을 딱 치며 스스로가 새로운 시 장르의 비조가 될 수 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온 세상이 디지털, SNS 세상으로 변했고, 또 그와 정반대로 현대의 시들은 자기만의 고집스러운 방식을 고수하며 점점 읽히지 않는 문자로 점점 전락해가는 것은 물론 독자로부터 외면 받게 된다. 시의 독자는 시인이지, 대중이 아니다.

디지털 문명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현대의 시는 읽힐 수 없는 비문이자, 수많은 암호로 무장한 거대한 난수표와 같다. 독자로부터 멀어진다. 현대의 시가 운명적으로 독자를 잃고 자기만족에 빠진 채 내밀한 황홀경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하다. 왜냐하면 정전적 가치를 지향하는 시의 새로움은 이해의 한계 저 너머에 생성되는 미지의 기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바로 그것이 때문이다. 이해되지도 않고 읽히지도 않는다. 따라서 새로움을 절대적인 신념으로 생각하는 현대의 시들은 독해가 가능하지 않은 무수한 암호로 자신의 성을 구축한 이해 불가능한 언어의 제의로 몰락하게 된다.

그러한 시점에 디카시는 소통을 목적으로 이미지와 시말이 결합한 새로운 시 형식을 구축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SNS상에서 상호 의식을 공유함을 물론 잃어버린 독자를 시창작자로 이끌어 대중과 함께 하는 시 장르로 그 위치를 공공이 하게 된다. 따라서 디카시의 혁신성은 기존의 시들이 매너리즘에 빠진 채 말장난에 가까운 언어유희를 감행하는 것과 달리 이미지의 진실을 추적하면서, 참된 인간학을 정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디카시는 이미지의 언어를 통해서 현대의 시들이 지향하는 정전적 가치를 허위의 운동으로 되돌려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미지말을 진지하게 실사구시하는 디카시의 문학 행위는 삶을 반성하는 행위이자, 너무도 거짓 조작에 익숙한 현대의 시들을 참된 언어의식으로 재무장하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국면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진실은 이 세계의 진실을 압박·지시하는 존재의 언어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총합은 이 세계의 진실을 지시하는 사태의 총합이다. 읽기에 앞서 디카시를 보는 행위는 이 세계의 의미에 참여하는 존재의 행위이자, 그리고 봄(Seeing) 그 자체는 너와 내가 상호 공명할 수 있는 공감의 행위이다. 어쩌면 디카시의 시문학사적 잠재력은 무궁무진할지도 모른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읽기에 선행하는 보기(Seeing)의 심미적 가치는 문자언어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 생성된 미적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정초하는 숭고한 행위이다. 시는 보는 행위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카오스를 헤매는 무의 공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5

 

디카시가 이 세상에 나온 지도 어느덧 햇수로 20년이 되어간다. 2016년 부로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사전에 디카시의 정의가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이상옥 시인을 필두로 초기 디카시 정착에 공헌한 김종회, 박우담, 최광임, 김륭, 이태관 시인 등의 노력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정전의 위치로 고양된 디카시는 이제 막 위반의 원칙에 직면한 것 같다. 장르로서의 디카시가 내적 분화를 통해서 새로운 실험을 준비하는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디지털 미디어의 환경이 급진적으로 변해가는 21세기에 디카시는 위반의 원칙으로 중무장하고 새로운 혁신을 이룩해갈 것이다.

이제 막 약관의 나이에 든 청년 디카시에게 새로운 도전적 실험이 요구되는 시기에 돌입한 것 같다. 잘 준비해 21세기 전체를 공명하는 시양식으로 발전하는 것은 물론 정전으로 우뚝 서 디카시 이후 시문학사 전체가 새롭게 해석되는 신기원이 이룩되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