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특집
시인수첩
2025-05-16시인수첩 25. 여름호 특집-디카시
김종회 디카시인 편 – 마법사 외 2편
■ 시인의 말
새로운 한류 문예 장르 디카시가 발원 20주년에 이른 2024년, 네 번째 디카시집 『영감과 섬광』에 수록한 시들이다. 순간 포착의 영상과 촌철살인의 시어를 결합하고, SNS를 통해 온 세계에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카시는 이제 하나의 대세요 시대정신이 되었다. 지금까지 국내 주요 지자체 18곳과 해외 주요 국가 및 도시 21곳에 지부가 창립되어 활동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이와 같은 디카시의 절실한 방향성과 현장의 흥왕은 내 창작에 있어서도 흔연한 디딤돌이었다. 시집의 제목을 ‘영감과 섬광’이라 한 것은, 디카시가 “시인의 창작 역량과 노력에 영감(靈感)을 더하고 섬광(閃光)의 시간이 동시에 작동하는 예술형식”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내놓는 시 3편은 미국 애리조나주 내륙에 있는 엔텔롭캐년의 ‘생애 여행’ 결과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가 거기 있었다.
저 어둠 속 어디에 숨어 있나
세상을 바꾸는 마법의 램프
흑암 속에서 찾은 사랑의 심장
-김종회 디카시인, 「마법사」
검은 벽을 가림막으로 얼굴 내밀어
저 멀리 단단한 주광(晝光)을 바라보네
작아야 선명함을 비로소 알았다니
-김종회 디카시인, 「엿보기」
페이지 시가 교외의 콜로라도 강
말발굽 형용으로 깊이 발을 담갔네
누가 있어 저 오랜 사연 풀어 말할까
-김종회 디카시인, 「홀스슈밴드」
김종회
경남 고성 출생, 경희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 30년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문학사상》 《문학수첩》 《21세기문학》 《한국문학평론》 등 문예지의 편집위원 및 주간
•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한국비평문학회, 국제한인문학회, 박경리토지학회, 조병화시인기념사업회, 한국아동 문학연구센터 등 협회 및 학회의 회장 역임
• 현재 중국 연변대학교 객좌교수,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촌장, 이병주기념사 업회 공동대표,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한국디지털문인협회 회장
• 김환태평론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시와시학상, 경희문학 상, 창조문예문학상, 한국기독교문화대상 등 수상
• 평론집 《문학과 예술혼》 《디아스포라를 넘어서》 《문학의 거울과 저울》 《영혼의 숨겨진 보화》 등, 저서 《한 국소설의 낙원의식 연구》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등, 산문집 《오독》 《글에서 삶을 배우다》 《삶과 문학의 경계를 걷다》 등
복효근 시인 편 – 혼례, 흘레 외 2편
혼례, 흘레
복효근
같은 방향을 보거나 마주보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야
앞쪽만을 보는 너를 위해 뒤쪽의 눈이 되어줄게
너의 뒤가 되어줄게
너의 뒤를 이어줄게
-복효근 시인, 「혼례, 흘레」
한 방울 이슬을 그리기 위해서는 사막 만한 곳이 없다
나비는 마른 오소리똥 위에서 천국을 그린다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감로수로 마신 자도 있다
똥과 꽃을 오가는 그 힘으로 나비는 산다 비로소
난다
-복효근 시인, 「나비의 행로」
성선설
- 뱀눈그늘나비
어두운 그늘 속 뱀눈처럼 노려보지만
실은 한 마리 나비이듯
울그락불그락 온몸에 용 문신을 두른 깍두기*도
마음 안엔
나비 한 마리 살고 있으리라는
-복효근 시인, 「성선설-뱀눈그늘나비」
*조폭의 말단을 이르는 속어
복효근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 『중심의 위치』, 디카시집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다』, 『사랑 혹은 거짓말』 등이 있으며 ‘신석정 문학상’, ‘박재삼 문학상’, ‘한국작가상’, ‘디카시 작품상’ 등 수상
송찬호 시인 편 – 성냥개비 외 2편
■ 시인의 말
문득 보이는 게 있어서
폰을 꺼내 찍는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그것 뿐이다
이걸 그으면
초록불이 확 일어날 거야
-송찬호 시인, 「성냥개비」
천일홍
위급한 시간은 지나갔다
여기저기 피를 지혈시킨 솜뭉치
-송찬호 시인, 「천일홍」
담벼락에 도마뱀이 착 달라붙어 있다
담벼락이 금 가
더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하여
-송찬호 시인, 「도마뱀」
송찬호
충북 보은 출생.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이 빈 의자』, 『붉은 눈, 동백』,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외. 디카시집 『겨울 나그네』, 『난 고양이로소이다』. 디카시 작품상, 이상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동서문학상 수상
정채원 시인 편 – 비몽 & 사몽 외 2편
■ 시인의 말
매 순간
나를 스쳐가는 것들
내게서 도망치는 것들
그대로 보내지 않겠다
찰칵!
네가 나에게 잡힌 순간
나도 이미 너에게 잡혔지만
두고두고 꺼내 봐도 닳지 않는 세상은
누가 뭐래도 아름다워라
바늘꽃 사이로 지나가는 건
개도 아니다
천사도 아니다
여기는 누구의 꿈속인가
-정채원 시인, 「비몽 & 사몽」
나는 당신을 도굴해서
내 무덤에 넣어야겠다
-정채원 시인, 「도굴꾼」
밤이면
홀로 더 단단해진다
얼음이 우는 날에는
거꾸로 선 나무를 심는다
-정채원 시인, 「얼음호수」
정채원
1996년 월간 《문학사상》으로 등단.
작품집으로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등이 있음.
편운문학상, 세계디카시인상 등 수상.
천융희 시인 편 – 꼭, 있다 외 2편
■ 시인의 말
그들이 머금고 있는 말에 귀 기울여
단지,
에이전트(agent)로서 받아 적었을 뿐이다
순간의 느낌이라 한 줄로도 충분했으며
존재마다 또 하나의 우주였다
어디에도 합류 못하고
세상 근심 혼자 다 짊어진 듯
그래서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사람
-천융희 시인, 「꼭, 있다」
수십 마지기 논을 유산으로 받았다는
여고 동창과 헤어진 후
씩씩거리며 집에 들어서자
틈틈이 바라봐 주었던 벵갈고무나무가
수백 마지기 물 댄 논을 쓰윽 내밀었다
-천융희 시인, 「한 끗 차이」
넘치도록 물량을 주시되
곳곳에 과로 방지턱을 허락하시어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게 하소서
-천융희 시인, 「아내의 기도」
천융희
경남 진주 출생. 2011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스윙바이』. 디카시집 『파노라마』. 디카시해설집 『디카시 아카이브』. 유등작품상, 이병주국제문학 경남문인상 수상. 현재, 《시와경계》 및 《디카시》 부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