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월제

박송이 - 2025년 여름호

2025-06-15

주월제

 

 

 

박송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익숙한 타인의 얼굴이

재로 흩어진다

노랫말이 꺼지려 한다

 

순창에 가고 싶다

닭이 사라진 집터에

그을린 몸으로 서고 싶다

 

피붙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양계장을 사랑했던 아이

 

닭똥 냄새가

문신처럼 밴 저수지

그날 빠뜨린 일기장이

아직도 잠수 중이다

 

엄마가 양계장에 불 지르던 날

나는 보았다

 

사이렌 소리보다 낮게

피부 아래 깊숙이

한없이 검게

딱딱해지던

심장

 

노래하던 나무들이

인공호흡기처럼

불꽃 속에서

우는 아이들을 낳고 있었다

 

엄마는 고향의 수치였고

나는 엄마의 흔적이었다

 

순창은

무덤에 놓인 꽃

잿더미 위에 핀

화염이었다

 

맨발로 순창을 떠나던 날

탄 냄새 먹은 지폐로

새 일기장을 샀다

 

깨지기 전, 나의 달걀

나의 미지, 나의 고향

 

꾹꾹 눌러쓴 자장가가

색연필처럼 늘어갔다

 

안녕, 이건 작별하는 안녕

안녕, 이건 껴안는 안녕

 

닭털 같은 노래를 남긴

모든 엄마와 가축에게

바침

 

 

 

 

 

 

박송이 시인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새는 없다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조용한 심장, 나는 입버릇처럼 가게 문을 닫고 열어요, 보풀은 나의 힘,저스트 워킷과 동시집 낙엽 뽀뽀등이 있다.

 

 

 
 

AI 해설

 

 

 

이 시는 깊은 상실, 죄책감, 기억, 정체성의 문제를 불길과 고향 , 가족사를 통해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격렬한 감정과 기억의 파편이 뒤섞인 서사시로 특히 어린 시절의 비극적 사건과 그것이 남긴 정서적 유산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