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가는 길
임봄 - 2025년 여름호
2025-06-15서해 가는 길
임 봄
저녁 무렵부터 산비둘기가 웁니다. 영안실에서 보낸 편지에는 미안이라는 단어가 바늘처럼 솟아 있습니다. 용서가 무심하게 손을 흔들기도 합니다.
문지방을 넘어오는 어둠, 목이 잘린 동백은 난간 위에서 노란 잇몸을 드러냅니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기어가던 달팽이가 무중력의 시간을 통과하려 위액을 쏟아내듯 우리는 각자의 별을 향해 발을 내디뎠습니다.
계절이 지날 때면 아주 잠시 날카로운 연민이 스치기도 했지만, 4월에 눈이 내리고 산수유는 피지 않았습니다. 깨진 유리병 안을 휘돌아 나가는 바람은 꼭 당신이 불던 휘파람 소리 같고 허공은 기댈 곳이 없어 높이 오르기가 어렵습니다.
뼛속까지 검은 새가 있어. 이 말은 당신이 내게 한 말이었습니다. 뼛속까지 검은 새는 행복했을까요?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왠지 비 냄새가 스며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을 떠난 비가 오래 길을 적시듯 떠나는 것들은 가볍고 남겨진 것들은 언제나 무겁습니다.
파도의 겹 사이에 각인된 유언이 빗방울을 입고 은빛으로 반짝입니다.
임 봄 시인
2009년 <애지> 시 등단 / 2013년 <시와사상> 평론 등단
시집 <백색어사전>, 평론집 <상상력의 에코그라피> <고독, 시간과 존재의 코나투스>
2022년 계간 <애지> 작품상 수상
AI 해설
이 시는 죽음과 이별, 그로 인한 상실과 죄책감, 용서, 그리고 기억을 깊이 있게 다룬 서정시입니다. 시의 제목인 “서해 가는 길”은 단순한 공간적 이동을 넘어, 죽음을 향한 여정, 또는 떠난이를 따라가는 마음의 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