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는 잠들 수 없다
이원규 - 2025년 여름호
2025-06-15토끼는 잠들 수 없다
이원규
서울의 내 친구는 언제나 놀란 토끼
증권시세 널뛰는 출렁다리를 건너간다
내 친구가 충혈된 토끼눈으로 일할 때
나는 지리산 깊은 골의 얼레지 꽃치마를 바라본다
내 친구 토끼가 밤새 가상화폐 외줄 그네를 타면
나는 슬그머니 백 살 오동나무꽃에 내리는 별빛을 만진다
구름다리 무지개다리
동아줄 하나라도 툭 끊어지는 순간
가내 두루두루 목숨이 위태롭지만
내 친구 토끼는 실로 위대하다
알고 보면 야생화도 별나무도 위험천만한 짐승이니
지리산의 여덟 번째 집 쌀통에는 대출금뿐
나 또한 살아남아 신통방통 기묘한 토끼
토요일에 토끼 두 마리가 만나
서로 치하하며 응원하며
지글지글 삽겹살에 눈꺼풀이 빨간 소주를 마신다
일생일세 놀란 토끼는 잠들 수 없다
이원규 시인
1984년 『월간문학』,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달빛을 깨물다』 『돌아보면 그가 있다』 등
16회 신동엽문학상, 11회 디카시작품상 등 수상
AI 해설
이 시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도시인과 자연 속의 자아를 대비시키며, 끊임없이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토끼”라는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