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입속의 가시
김춘식 - 2025년 여름호
2025-06-17화창한 봄날 입속의 가시
김춘식
물풀처럼휘감는다
가로수들이손을뻗는다.흔든다.
아프다.나여기있다.소리는제각각이지만
머리풀고정신없이아우성치는손짓들.마치,살려달라고,나여기있어.힘겹게
통절하게,
호소한다.
바다속은너무차가워
잎속의검은입들
그이파리안의혀와꽉다문치아들
나는알지못한다.
내입을가로막는입들
혀가나무의이파리를닮아간다.
길게힘없이손을뻗어
지나가는차들을향해
손을,손가락을,간절히뻗는가지들.
심장이흔들린다.
가슴이뚫린다.
머리를풀어헤친나무들이,
이파리와가지가
입이되고손이되어
내옷을잡고울부짖는다.
덜지못한부끄러움과죄의식은내입속의작은이파리들.
가시처럼목에걸려자라난다.
언젠가이가시의놀라운성장이심장을뚫고,가슴을다헤집어
나를껍데기로만들것이다.
이멀쩡한세상이그렇듯
부끄러운깡통으로만들것이다
-그것을 결코 말하지 않았고 또 그는 그것을 말할 수도 없었고 말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동경은 그를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었다. 지치고 고통으로 떨면서 그녀를 말없이 울면서 떠나보내게 했던 그는 이제 체념을 할 수 있는 분명한 힘을 갖는다. 그것은 냉혹하고 무자비할 수 있는 힘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의 삶을 파멸시켰기 때문이다. -샤를르 루이 필립,“마리 도나되”중에서
(루카치, 「동경과 형식」, 「영혼과 형식」, 심설당, 1988, 173쪽.)
사랑하는 누군가를 파멸시킨 무자비함.
미지에 대한 동경을, 빈 깡통이 된 현실을, 그는 그렇게 상처를 통해 배웠다.
결코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다. 상처란 그런 것.
김춘식 시인
199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당선 등단.
2002년 무크『시힘 01-햇볕에 날개를 말리다』에 시「비슬번히 인생을 보내다」외 발표.
평론집 불온한 정신』연구서 『미적 근대성과 동인지 문단』등. 계간 『시작』편집위원.
동국대학교 교수.
AI 해설
이 시는 봄날의 생명력 넘치는 풍경을 통해 표현되지 못한 죄의식과 상처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나무의 이파리와 가지는 말하지 못한 고통과 절규의 은유로, 억눌린 감정이 결국 자아를 파괴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