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산책
박소란 - 2025년 가을호
2025-08-11흐린 날의 산책
박소란
비늘이 씹힌다
입에서 끄집어낸 비늘 조각이 벌써 일곱, 아홉, 열두 개째
밤마다 천변을 걸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건강을 살피는 속도로
하루가 다르게 비대해지는 물고기들
불콰한 낯으로 새우깡을 던지는 사내들
물에 발을 담근 건 어디까지나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는데
무언가 종아리를 끌어당기는 듯하다 세게 무는 바람에
아야, 피가 조금 나기도 했는데
살이 움푹 팬 자리
어느덧 검붉은 딱지가 앉은 자리
간지럽다 피가 삭는다는 말, 나으려나 봐
다 나으려나 봐
천변을 걸었다
수풀 사이 상처를 핥던
외팔의 날벌레들이 몰려와 잉잉거렸다, 여름이니까 아무래도
약을 좀 칠 수밖에
독한 냄새가 스미는 동안
비늘이
비늘이
자꾸만 잇새를 파고들어
비늘이란 원래 이렇게 질긴 것인지
씹으면 씹을수록 사납고
다 씹히지는 않고
삼켜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사람인 척
뭐든 가뜬히 먹고 마시며
천변을 걸었다
자전거에 치인 새끼 뱀 한 마리를 훔쳤는데
셔츠 주머니에 넣어 왔는데
돌아와서 보니 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무서워
뱀도 내가 무서웠겠지
비늘을 씹는다
목구멍 안쪽에서 퍼덕이는 무언가, 비처럼 억수처럼
박소란 시인
2009년 《문학수첩》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 『수옥』, 산문집 『빌딩과 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