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레

황정산 - 2025년 가을호

2025-08-11

지레

 

 

 

황정산

 

 

 

냄새를 잃었다

창틀에 남은 먼지 냄새도

젖은 수건의 묵은 물비린내도

고양이 털에 묻은 햇살의 향기도

지레 사라지고 없다

 

비누거품을 든 두 손은 서로 엇나가고

밀려오는 안개가 내 체취를 메우고

기침 한 줌

혀끝에 무뎌지는 쓴맛으로

죽음을 지레 지린다

 

바람에 흔들렸을

옷깃의 옅은 소리를 들어도

그림자만 지레 남고

내가 있었다는 흔적은 없다

 

후각을 잃고

지레, 빈 것들의

냄새를 알았다

 

 

 

 

 

 

황정산 시인

1992년 <창작과비평>으로 평론 활동 시작.

2002년 <정신과표현>으로 시 발표.

시집으로 『거푸집의 국적』, 저서로는 『주변에서 글쓰기』, 『소수자의 시 읽기』 등이 있다.

현재 계간 『상상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