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창가에서
김영찬 - 2025년 가을호
2025-08-11라틴어 창가에서
김영찬
라틴어 창가에 앉아 결국 너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밤이면 밤마다 머릿속 하얗게
운율 꺾이는 문장들
플레니모여, 끝없는 오솔길이여
왜 라틴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울타리 밖으로 던져질 메시지
없는
메시지일 뿐
실거주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할지라도 내 마음의 빈집에
밤마다 플레니모는 찾아와
길을 내준다
인터스텔라, 은하수 쪽으로 난 창문
*
논 코에르체리 아 막시모 Non coerceri a maximo,
콘티네리 타멘 아 미니모 contineri tamen a minimo,
디비눔 에스트 divinum est.
(거대함에 눌리지 않고 / 작은 것에 담기는 것
그게 신神이다)
라틴어 쪽지를
접고 또 접어 떠돌이별에나 뿌려주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더 번안 번역되지 않아도
가장 아름다울까
그런 것 따지지 말고 별빛 한 잔에 라틴어 한 조각
나눠 먹자고
입꼬리 내리며 서로 웃었다
*세네카가 절친 루킬리우스에게 썼다는 라틴어 편지
김영찬 시인
2002년 계간 <문학마당>에서 문단활동 재개.
시집으로는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 『투투섬에 안 간 이유』 및
『오늘밤은 리스본』등이 있음. 웹진《시인광장》편집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