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꽃
박 숲 - 2026년 봄호
2026-02-28얼음꽃
박 숲
당신을 영구동토 깊은 곳에 묻고 싶어요
말들이 썩지 않도록 표정을 얼려두고
입술의 온기를 꺼둔 채
해동은 끝내 시도하지 않을래요
다람쥐가 묻어둔 씨앗이
시베리아에서 삼만 년 뒤
깨어났다는 얘길 들었어요
얼음 깊은 곳에 담긴 눈물은
썩지도 숨 쉬지도 않은 채
단단한 잠으로 버텼겠지요
병실 복도 끝
휠체어를 밀고 나오던 당신은
너무 희고 고요해서
실레네 스테노필라가 막 눈을 뜬 것 같았어요
손끝이 스치면 금이 갈 것 같아
나는 숨을 죽였죠
하지만 기억은 자꾸 체온을 되찾아
다른 얼굴로 번져요
상온에 놓인 유리잔처럼 물기가 맺히고
형태가 흐려집니다
당신이 떠난 빈집에 앉아 있으면
가구들이 라플란드 바람 속처럼 숨을 쉬어요
당신의 어깨처럼 움푹 꺼진
침대는 알래스카 서리 속에 잠겨 있고
나는 몸을 둥글게 말아 체취 속을 파고듭니다
보이지 않는 팔이 나를 씨앗처럼 감싸 안지요
얼어 있는 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닿는 속도가 느린 거라죠
얼음 속에서 핀 꽃은 투명한 눈물을 닮았을까요
나는 끝내 꽃을 보지 못하더라도
녹지 않는 물음 하나를 골라
가슴 깊은 동토층에 묻어둘래요
언젠가 우리는 누군가의 입김 속에서
하얗게 맺혔다 사라지겠지만
숨에 닿을 때마다 당신의 이름이
얼음꽃처럼 피어나기를

박숲 시인
2023년 《현대경제신문》신춘문예 장편소설, 계간 《시와산문》 시 당선.
소설집 『굿바이, 라 메탈』, 장편소설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