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김용희 - 2026년 봄호

2026-04-01

  청혼

 

 

 

  김용희

 

 

 

  벗어놓은 네 신발을 정리하고 싶어

  가지런히

  문쪽으로

 

  어떤 고백은

 

  깜박 잃어버린 카메라가

  그 자리 그대로에 있는 것처럼

 

  사라지지 않는 기억을 현상하지

  꽃비가 내리는 길을

  혼자 걷지 않도록

 

  야속함을

  약속하지 않을게

 

  채도가 낮은 먼 풍경이

  그림이 되도록

  진한 물감이 될게

 

  가지런한 이가 보이는 네 웃음

 

  부지런한 이가 되어 지킬게

 

  창을 들고 성을 지키는 병사처럼

  지팡이를 들고 환상을 수호하는 마법사처럼

 

  허풍 심한 나를 타박하는 네 웃음이

  태풍에 휩싸이지 않도록

  넉넉한 외투를 입을게

 

  우산이 뒤집어져도

  머리가 젖지 않도록 작은

  동굴을 만들게

 

  연애는 소설을 쓰는 일

  이별은 시를 쓰는 일

  혼자는 노래를 부르는 일

 

  함께 이 모두를 지났으니

  서로의 예술가가 되어

  낭만에 오래 취하자

 

  서로의 그늘에 손을 잡고

  빛으로 걸어 나가

  선명한 그림자를 오래 바라보자

 

  우리를 기다리는

  골목과 거리

  천변과 바다가

  새로운 미학으로 쓰일 때

 

  어릴 때 죽은 개를 소개해줄게

  구석을 좋아하는 널 위해

  두 팔 벌려 서 있을게

 

  네가 시리얼이 되면

  내가 우유가 될게

  눅눅히 녹아가는 널

  끝까지 안을게

 

 

 

 

 

  

  김용희 시인

  202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