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공사 중
한백양 - 2026년 봄호
2026-04-01내부 공사 중
한백양
그렇다고
내가 죽은 건 아니지만
여름이 올 때까지, 불붙은 각목을 휘두르던 동네 아이들이 부모 손에 붙잡힌 채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때까지, 그게 꼭 불씨의 파종 같을 때까지
죽었다고 치면서, 집에 기댄 채로
흉흉한 소문이 도는 동네를 관찰하기, 재개발은 내리막이 끝나는 부분까지 이루어질 겁니다, 그 말은 오르막의 사람들이 비참의 조감도를 낮이고 밤이고 바라봐야 한다는 뜻, 전철역 근처에 걸려 있던 현수막을 해석한 후로는 발자국이 오르막과 친하게 지낸다 여기서 더 있을 수 있겠다, 숨이 가빠졌음에도 뒤를 힐끔댈 때
누가 와서 부딪친다
물 비린내가 먼저, 화장실 타일의 검은 때는 조금 늦게, 앞을 안 보고 다니는 새끼가 아직도 여기에, 끝이 불분명한 문장 하나 가장 나중에 흐려지고
일단은 고개를 숙이기
정수리를 보여주는 건 나를 어떻게 해도 좋다는 뉘앙스다 되도록 아프지 않게, 몇 년 전의 피부 낭종 시술처럼 할 거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뉘앙스다 집값이 오를 것 같아요, 내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먼지가 소복한 길고양이들과 마주칠 거예요, 내 마음처럼 꼬리가 부풀어 있겠지만, 기대할 때는 기대해야 할 대상을 종종 놓치게 된다 찢어진 살에서 끄집어낸 덩어리가 터무니 없이 작았고, 그것을 보여준 의사가 이런 일, 앞으로도 있을 거라고 했는데
지금도 헷갈린다
기대하라는 건지, 실망하라는 건지, 그러나 일단 여름이 온다면 말하겠지
죽지 않았음에도
산 것 같지 않은
동네 얘기, 아이들이 다니던 어린이집은 이제 실버 타운이 되었고, 태권도장 버스에 치었던 소년의 핏자국 옆에서 구상권 청구, 라고 페인트로 적힌 글씨가 더욱 번들거리는 곳, 새 길이 생기고, 새 사람들, 새 버스 노선이 생길 거라고, 편의점 앞에 서 있던 사람들, 집을 소개해 주었던 부동산 사장님까지 포함해서 수런대고 있다 새 죽음도 있겠죠, 끼어든 후에야 배우게 된다 새로움에는 아직 순서가 없구나, 한 번 더 정수리를 보여준 후에야 이해된다 내가 떠돌았던 오늘
공실이 많았고-
한 번에 수백 명씩 사람들이 나타나고 사라질 때, 여백은 어떤 의미인지, 실은 가스비 독촉장을 점선에 따라 뜯어내는 손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은데
내리막 부근에선 이미 공사가 한창이다
우리는 몰라요, 우리는 여기 여름까지만 있어요, 어깨를 으쓱대면서

한백양 시인
2024 <동아일보>,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