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길
나태주 - 2026년 봄호
2026-04-01생명의 길
나태주
인간은 기억 속에서 살고 끝내
기억 속에서 생명을 얻는다
그것도 나의 기억이 아니라
너의 기억, 타인의 기억 속에서
내가 살아 숨 쉬고 생명을 얻는다
생각해 보라
여기 착한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하자
절대로 그는 혼자서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다른 사람, 너, 더 많은 이인칭이
입을 모아 저는 착한 사람이다
그럴 때 그는 착한 사람이 된다
비록 그 사람 지상에서 목숨 다하는 날에도
세상 사람들, 타인의 기억 속에
착한 사람이란 기억이 남아 있는 한
그는 죽어서도 산 사람이고
숨 쉬지 않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숨 쉬는 사람이다
하지만 여기
저 사람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사람들 여럿 입을 모아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 있다면 그는
살아 있어도 이미 죽은 사람이고
애당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된다
그러하다
기억이 생명이고 존재다
그것도 나의 기억보다는
타인의 기억이 더욱 그렇다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타인의 기억 속에서 내가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또 하나 생명의 길이라는 것!
이것은 실은 무서운 일이다.

나태주 시인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1973년 첫 시집 『대숲 아래서』 이후, 창작 시집 50여 권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