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개봉한 영화

정재율 - 2026년 봄호

2026-04-04

  새로 개봉한 영화   

 

 

 

  정재율

 

 

   

  12월엔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다가

  예전에 좋아했던 영화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그는 정확히 13분을 남기고 영화에서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영화를 다시 보는 것

 

  보고 또 보는 것

 

  새로 개봉한 영화는

  알고 보니 4K로 복원된 옛날 영화였고

 

  다 옛날이야기지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사랑했던 사람이 어떻게 좋아하는 영화가 바뀔 수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말했던 그는 나를 떠났고

 

  나는 새롭게 좋아하게 된 영화가 나보다 오래 살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영화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기억을 지워도 다시 사랑에 빠졌고

  또 다른 영화에서는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영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건 멜로가 아니라 판타지 아닌가

  

  우리가 함께 좋아했던 영화도 언젠가 복원되겠지

  운이 좋으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겠지

 

  횡단보도 위로 천천히 내려앉은 눈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다 옛날처럼 느껴지는

 

  거리엔 온통 환호성이

  온통 전구들이

  빛을 내고 있었고

 

  좋아했던 영화의 주인공을 떠올리다 주인공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가 떠올랐다

 

  그는 그 영화를 다 본 적이 없었고

  여전히 13분을 남겨두었을 것이다

 

  새로 개봉한 영화의 포스터를 가방에 넣고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엉겨 붙는 입김을 뒤로 한 채

 

  영화를 함께 보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정재율 시인

  201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온다는 믿음』.

  제14회 김만중 문학상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