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요

허향숙 - 2026년 여름호

2026-05-27

  어떤 고요

 

 

 

  허향숙

 

 

 

  숲에 들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

 

  코 끝에 아교처럼 달라붙어

  지워지는 중인

  어떤 동물이

 

  나를 맡고 있다

 

  눈이 까맣게 타 들어갔다

  바람이 혀를 내민 채 헐떡인다

 

  눈을 감았다

  검게 탄 해바라기의 심장들

 

  목이 꺾이던 시간 안에

  우리 있었다

 

  버스 속에는 저녁이

  구겨진 채 실려 간다

  나는 지하로

 

  전등이 꺼지면

  미개봉 통조림 같은 어둠

 

  갯지렁이 같은 전철을 타고

  흐무러진 대낮을 들고

  스물스물

 

  간다

 

  내 주머니 속

  접힌 빛 하나

 

  밤은 깊고

  우린 서로를 모르고

 

  혓바닥이

  수몰된 우물처럼 잠겨 있다

 

 

 

 

 

  

  허향숙 시인
  2018년 계간 <시작>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 『그리움의 총량』,『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