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와 두통약 사이의 삼각형
한영미 - 2026년 여름호
2026-05-27열쇠와 두통약 사이의 삼각형
한영미
발을 떼는 순간, 외줄이다
줄은 집에서 회사로
그늘 지나 난간으로 이어진다
하루 끝에 남는 문장은
입안에 눌러 담은 말과 고쳐 쓴 미소
발끝을 바라보는 순간
줄은 공중에서 크게 출렁이고
멀리 바라보면 잠잠해진다
나는 양손에
열쇠와 두통약을 나눠 들고
수평을 맞추고 있다
내게서 지울 수 없는 아이가 올려다본다
깃털 옷을 입고 작은 부리로 말한다
괜찮아,
떨어지지 않을 거야
그 말에 잠시
흔들리던 줄이 멎는다
줄 맞은편에는
서류철을 낀 내가 서 있다
아직 부족해
돌려 쓴 문장
이 감정은 가짜야
체크리스트가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줄이 조금 더 팽팽해진다
줄은 한 번 생기면
끝을 계속 늘인다
불안은 열쇠와 두통약 사이의 길이를
자꾸 다시 재고
중심이 어긋날 때마다
흔들리는 공중에
금이 간다
한 걸음 한 걸음
퇴고한다, 나는
깃털 쪽으로

한영미 시인
2019년 시산맥 신인 문학상, 2020년 영주일보 신춘 당선,
시집 :『슈뢰딩거의 이별』
영등포 문학상, 이민호 문학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