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별 3

신이인 - 2026년 여름호

2026-06-01

  석별 3

 

 

  신이인

 

 

   

  “지구가 판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반쯤 넋 놓은 내가 알아 듣기 쉽게 의사는 친절히, 더 친절히 말하기 시작한다.

  “당신이 끌어안은 엑스레이 기계에 따르면 당신은 어긋난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이 있었어

  사건을 몇 번 겪으며 나는 다치고 변형되었는데

  역사가 생겼어

  과학이라고 했어

  내겐 신이 필요하댔어

  살아 있는 한 반복되었어

 

  그건 아주 사사로운 사건이었다

  아기의 울음

  소년 소녀들의 사교

  젊은이의 춤

  노인의 신음

  어디에나 널렸지

  조현병 환자의 중얼거림

  특별함이 없지

  보아도 지나가고 들어도 잊는 것

 

  철근이 아주 조금 모자랐던 건물

  모자라지 않을 수도 있었던 건물

 

  지금 이 순간에도 연인들은 석회 반죽을 패듯

  석회 반죽 비슷한 것을 패고

  팬 모양대로 굳게 놔 두고

  아름다움을 주장한다

  당신의 기계에게도 물어보자

  오늘만 몇 명의 사람을 안았니?

  그들을 정녕 들여다보았니?

  망가지지 않은 이 있었니?

  아름다웠니?

 

  배우와 탐험가

  또는 그와 견주기 좋은 기계들

  끊임없이 찍고 또 찍고 전시하고 누구에게든 지겹도록 아름답다 사랑한다 말하네 늙어 가면서도

 

  아름다운 내가 좌측에 있었다

  사랑하는 내가 우측으로 잡아당겨졌다

 

  사랑은 언제나 정가운데에서

  좌측과 우측을 동시에 떠났다

 

  몇 번의 흔한 사건을 거쳐 나는 상습적인 지진과 지진에 대한 자조와 재미있게 생긴 돌멩이들과 휴화산, 낮고 부드러운 분화구와 끔찍하고 외로운 해저 생물을 얻는다

  종말에 대한 예감도

 

  이 페이지에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일부가 찍혀 있는 것 같아요

  어그러진 것 같아요

  당신은 내게 절대로 차트를 보여 주지 않아요

 

  내놔요

  내 얘기를

  말해요

  마음이 뒤틀려서, 마음이 헛놓이면, 마음을 철거하나요?

  그 모든 전말을 기록하고 이유를 찾나요?

 

  그럼요. 우리가 사는 세상인데요.

  우리가 사는 세상도 뒤틀리는데요.

 

  진료실 창밖에서는 트럭과 전봇대가 넘어지고 있었다. 땅과 땅이, 맞붙었을 때처럼 천천히 격렬하게 헤어지면서, 자기들 몸 위에서 살아 움직이던 미생물들을 쓸어 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이렇게 평온하지요?

   

  질문하는 순간 목을 떨 뻔했다.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동요하면 무너지려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미 무너진 사람은 동요할 수 없었다.

 

  무너진 건물이 단단한 건물을 통해 관찰되었다.

  건물 안에서 나는 시체처럼 평온했다.

 

 

 

 

 

    

  신이인 시인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산문집 『이듬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