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나는 장미 곁에 피었다
정지윤 - 2026년 여름호
2026-06-01하필, 나는 장미 곁에 피었다
정지윤
비는 느리게 날아온다
뿌리들이
콘크리트 밑을 기어간다
찰나마다
갈라진 틈이 드러난다
빗방울과 빗방울 사이
젖지 않는다 장미들이 선택할
틈도 없이 젖는다
하필, 나는 장미 곁에 피었다
숨어있던 가시들이 다가온다
두려움은 이제
지루할 정도야 장미와 나는
아무 대책이 없다
잠깐, 기다려
어쩔 수 없이 폭발하는 순간이 올 거야
유리문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구두들
너는 빠르게 나의 뒤편을 지나
담장을 뛰어넘는다

정지윤 시인
2015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2014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등단.
시집 :『나는 뉴스보다 더 편파적이다』. 시조집 『참치캔 의족』,『투명한 바리케이드』. 동시집 『어쩌면 정말 새일지도 몰라요』,『전달의 기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