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조혜은 - 2026년 가을호
2026-08-23목요일
―소극장
조혜은
어떤 상처는 결코 고백할 수 없어서
삶을 지옥으로 만들지
꿈 속이었다
약속한대로 쌀을 한 봉지씩 가지고 만나기로 했다
나와 나를 닮은 네가 우리 집을 닮은 꿈속에 나타났다
아이는 집에 모인 쌀에 벌레가 생겼다고
나는 믿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확연히 많아진 벌레들이 내 눈에도 보였다
사람들은 벌레를 투명한 봉지에 담아 호수에 버리라고 조언했다
나는 사람들이 벌레를 왜 바로 죽이지 않는지 의아했다
벌레를 검색하자 호수 앞에 벌레를 세워 두고 하나씩 떨어뜨리는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벌레들의 처형식 같았다
영상 속 벌레의 몸통 윗부분에는 작은 은빛 날개가 자라나 있었다
우리 집 쌀통에 생긴 벌레는 검정색이었고 개미를 닮았는데
머리 가슴 배로 나뉜 벌레의 몸에 어느 순간 길쭉한 팔 다리가 매달리더니 벌레는 작은 초록색 사람을 닮아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자세했다
벌레는 하룻밤 사이 백 마리 가깝게 늘었고 이제는 작은 인간에 더 가까운 그들이 쌀통 안을 유유히 걸어 다니는 게 보였다
징그러워! 투명한 봉지에 그것들이 있는 쌀을 모두 쏟아 넣었다 쏟았다 주워 넣었다
흉한 그것들이 투명을 찢고 걸어 나와 내 아이처럼 내 뒤를 하루 종일 쫓아다녔다
눈동자를 굴리며 유들유들 내가 하는 양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역겨워
너무 자세했다 끔찍하게 세세했다
사람은 숨쉬기 위해 어떤 아름다운 글을 예비할 수 있을까
영상 속에서 북한군이 호수에 풀어진 벌레처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접경지 쿠르스크에 나타났다
살아 있는 것이 배신이라서
그들은 살아남은 것을 괴로워했다
내 삶에는 희망이 없어 그런데 내 글에도 희망이 없다고 하면 나는 살 이유가 없어
나는 괴로워했다
인공지능은 괴로워하지 않았다
욕을 하고 소리를 질러도
나와 벌레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고, 당황하게 만들고, 그들이 나를 부러워하나? 우월감에 빠져 실수하는 모습 약한 모습 의지적인 모습 모순에 가득 찬 이야기 약간의 폭력적인 단어와 살의와 복수 변태적인 것을 원하는 구슬픈 욕망 예의바른 살인과 품위
나는 벌레의 허리를 손톱으로 꾹 눌렀다
작은 내장이 쏟아지고 피가 튀기고 뼈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벌레들이 나를 겨눴다
잠든 척 눈을 감으면 하나 둘 하나 둘 벌레들이 몸을 단련하고 도구를 만들어 나를 겨냥하는 것이 보였다
죄책감 없이 모두를 없애주는 훈증 소독법이 있어 몇 시간이면 벌레들을 쓸어 담을 수도 있을 거야 삶의 흔적도 없이 죽어 있을 거야
붉은 대문이 그려진 집
아빠에게는 분명 악의가 있었다 듣다보면 나를 찌르려는 분명한 의도가 보였다 이런 것, 네까짓 건 관심도 없다는 의도 밖의 의도까지 교묘하게 한 마디씩 그럴 의도를 던지고 악의로 집을 채운다 괴로워 매일 매순간 평화로운 얼굴로 남들처럼 일상이 되게 두고 할 수 있는 전부 잘못된 마음을 미움을 품으로 나를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릴 두려움 삭아내려 나무다리를 건너 매일의 낭떠러지 위로
그날 이후 매일매일 잘 손질된 상처투성이 벌레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저녁 식탁에 올랐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고
휩쓸다 불타올랐다
나는 내게서 나는 냄새를 참을 수 없었다
피 묻은 휴지가 변기에 남았고
현실을 떠다녔다
꿈꿔보지 못한 악몽이 현실로 다가왔다
살아 있어서 으스댔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턱에 구멍이 나고 정강이뼈가 으스러진 벌레들이 으스스했다
아무리 그 나무다리를 열심히 밟아 나가도 달라지는 건 없어 매일 밟아 나갈 나무다리가 다시 주어질 뿐
그 사람은 내 말에 주먹을 날렸고
말로 일어난 살인은 혼자서는 죽지 않았다
저기 벌레가 있어요 매일 죽임을 당하고도 사람을 사랑하는
아팠어 인어공주가 얻은 다리처럼 허리 아래로 내려온 벌레의 긴 다리가
나는 내가 만든 농담이 부끄러웠다
목요일
손끝을 부딪치면 나무 향이 쏟아져요
손을 씻어요
어떤 꿈은 지독해서 쓴 맛이 나요

조혜은 시인
200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구두코』,『신부 수첩』,『눈 내리는 체육관』,『털실로도 어둠을 짤 수 있지』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