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낭독
손음 - 2025년 봄호
2025-02-17
사물 낭독
손음
사물들의 고귀한 학교 식물과 벌레와 고양이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상처를 잊을 수 있다 기억한 것보다 더 많이 잊는다 차갑게 빛나는 나무들 나뭇잎의 뒷면 새들의 입술 강물의 흰 손 이 모두를 느끼는 동안 나는 상처를 잊을 수 있다 그것들을 느끼면서도 마치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상처를 잊을 수 있다 내 투명한 공기의 심장들은 그 사물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고 사물의 응시가 나를 부드럽게 만족시킨다 나는 정교하게 상처를 잊을 수 있다 영혼도 육체도 없는 단순한 응시, 오직 스쳐 지나가면서 응시하는 한 줌의 공기였을 뿐이다 나는 완벽하게 상처를 잊을 수 있다 나는 완벽하게 상처를 잊을 수 없다
손음 시인
1997년 <부산일보>, <현대시학> 등단. 시집『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칸나의 저녁』 연구서 『전봉건 시의 미의식 연구』가 있음. 제11회 부산작가상 수상.
AI 해설
이 시는 자연과 사물의 존재를 통해 상처를 잊고자 하는 화자의 내면을 담고 있다. 식물, 벌레, 나무, 새, 강물 같은 사물들은 단순한 응시를 통해 화자의 아픔을 덜어주지만, 동시에 그것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화자는 사물들의 고요한 성장과 변화 속에서 위안을 얻지만, 완벽한 망각은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정교하게" 상처를 잊는다는 표현은 의식적으로 잊으려는 노력이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잊을 수 없다는 모순적 고백이 이루어진다. 결국, 이 시는 치유와 망각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