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의 손

전비담 - 2023년 봄호

2025-02-19

 

 

 

 

빵의 손

 

 

전비담

 

 

 

새벽같이 줄을 서서 바게트베이커리 갓 구운 빵을 사 왔다. 빵을 접시에 올려놓고 기도를 한다. 발랄한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들이 바닷가 풀밭 피크닉 바구니에서 긴 빵을 꺼내는 인상파 그림 앞이다. 접시의 빵이 아침햇살에 빛났고 지난밤 야간 근무조 스무 살 아가씨의 손을 빵 반죽기가 물고 들어갔다는 뉴스가 티비에 나온다. 기계가 인간의 손 앞에서 멈출 줄을 모르다니, 잠깐 생각하다 모은 두 손을 멈출 줄 모르고 치켜세운다. 주여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순결한 빵의 속살을 뜯어 갓 우린 잉글리시티샵 얼그레이에 적시면 갓 스물 아가씨의 살과 뼈를 갈아 넣은 붉은 강복이 아침뉴스와 함께 흥건해진다. 지난번 제빵기사들에게 **노총 탈퇴 종용을 하여 문제가 된 회사입니다. 아가씨의 손은 죽은 뒤에 손이 아니라 기계였음이 드러났습니다. 고장 난 기계는 흰 천으로 덮어 밀쳐 두고 다른 기계들을 투입하여 빵 반죽 작업을 계속하였습니다. 신선한 빵을 신성한 아침 식탁 기도의 손에 올리려고 졸음에 겨운 야근의 손은 붉은 잠에 빠져 죽었다. 아직 다 오지 않은 아가씨의 살과 뼈들이 식탁의 접시에 수북했고 모아 올린 기도마다 아가씨의 잘린 손이 은혜로이 강복하는 아침이다. 호주머니에 넣어도 자꾸만 손이 붉었다.

 

 

 

 

 

 

전비담 시인

2013년 제8회 <최치원신인문학상> 등단. 시집 『철탑에 집을 지은 새』 외 다수의 공동시집이 있음.

 

 

 

 

AI 해설

 

 

이 시는 일상 속에서 쉽게 소비되는 음식 뒤에 숨겨진 노동자의 고통과 희생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갓 구운 빵이라는 따뜻한 이미지와 야간근무 중 사고로 손을 잃은 아가씨의 비극이 대비되며, 소비자의 무심함과 산업 시스템의 잔혹함을 비판합니다. 기계처럼 취급받는 노동자의 현실과 이를 외면한 채 식탁 앞에서 드리는 기도는 위선적인 태도를 상징합니다. 붉게 물든 손은 희생의 흔적을 상기시키며, 소비와 폭력의 연결고리를 날카롭게 고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