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여행

김춘리 - 2023년 봄호

2025-02-19

 

 

 

 

이별 여행

 

 

김춘리

 

 

 

우리는 흰 것을 동경하는 습관이 있지 상상하기 좋은 것은 첫눈이었고 기온은 중요하지 않았지, 갈매기를 오리다가 생크림 얹은 파르페가 출렁거리는 기분, 흰 눈은 날개의 모습으로 바다 위에서 녹아내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대합실은 시끌벅적한 목소리로 익숙해져갔지 기름을 먹어 검게 빛나는 침목들 원래는 흰빛이 아니었을까 기차가 느린 속도로 침목 위를 지날 때마다 뗏목처럼 출렁거리는 울렁증 우리는 처음부터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았어 출발과 도착이 있을 뿐 추락과 이륙이 있을 뿐이라고 한 걸음 물러서서 걸으며 주머니를 뒤집었지 둥근 걸 사모했어 아슬아슬하게 그려진 포물선 이것도 둥근 것이라서 사소한 일 들이 굴러떨어졌어 잊었는데도 굴리는 일은 제격이었지 나는 밀가루를 굴리다가 죽은 이름을 굴리다가 겨울이 궁금해서 귤을 굴리는 날에는 빵이 처박혔지 이를테면 밀가루 반죽을 저울의 접시에 올리는 일과 손가락으로 화려한 토핑을 올리는 여행이지 모든 여행은 빵 위에 새로운 토핑을 올리는 일이니까 빵에 꼭짓점을 만드는 퍼포먼스지 그렇게 나는 침목 같은 판 위에 하얀 밀가루를 굴렸지 빵 만들기는 이별 여행이며 궤도를 벗어난 야구공이었어 저녁이 되어서야 희게 빛나는 얼음 그리고 이별

 

 

 

 

 

 

 

 

김춘리 시인

2011년 《국제신문》 등단. 시집 『평면과 큐브』『모자 속의 말』『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가 있음.

 

 

 

 

AI 해설

 

 

이 시는 이별의 감정을 여행에 빗대어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흰 눈, 밀가루, 얼음 같은 ‘흰 것’은 순수함과 동시에 이별의 공허함을 상징하며, 떠남과 도착, 추락과 이륙처럼 이별의 양면성을 담아냅니다. 빵 만들기의 과정은 이별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행위로 그려지며, 굴러가는 밀가루와 귤은 흘러가는 시간과 감정을 상징합니다. 결국, 이별은 또 다른 출발점이며, 빵 위에 새로운 토핑을 얹듯 삶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려는 시인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