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e
이은화 - 2023년 봄호
2025-02-19
Anne
이은화
멜빵바지를 입은 소년과 단발머리 소녀가 브런치를 먹고 있어 나이프를 든 소녀는 손을 떨어 마른 잎처럼 말이야
소년이 소녀의 손등에 손을 얹자 소녀가 엷은 웃음을 지어 은발에 햇살이 쏟아지는 순간이야 느리게 접시를 비우는 동안 소녀의 떨림을 이해하는 소년 얼굴에 주름이 지고 있어 자꾸 소년과 소녀를 훔쳐보게 돼 예쁠 것도 없는 은발의 풍경을 말이야
햇살을 만끽하는 중이야 아름다운 것들은 쉽게 사라져 짧은 키스처럼 말이야 그래도 키스가 필요하다는 믿음은 변함없어 사라지는 것들은 격렬할 자유가 있으니, 카페에서 홀로 쓸쓸할 때 키스는 위로가 될 수 있잖아
소년 소녀가 나란히 눕는 소리가 들려 사라진 길을 따라 은발이 되고 허리가 굽었겠지 소녀의 떨린 손을 잡아주던 소년이 떠올라 아름다운 것들은 왜 슬퍼지는지 몰라 붉음일까 초록 때문일까
느리게 접시를 비울수록 자꾸 허기가 져 딥키스가 필요한 날이야 누구라도 괜찮다면 은발 소녀의 키스를 훔칠 거야
소년과 소녀가 사라지고 있어 햇살 속 눈 녹는 듯 말이야 아직 머리칼 한 올도 훔치지 못했는데 자꾸 사라지는 소리가 들려
이은화 시인
2010년《詩로 여는 세상》등단.
AI 해설
이 시는 시간의 흐름과 사랑의 덧없음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브런치를 먹는 소년과 소녀는 순수한 사랑의 순간을 상징하지만, 그들의 떨림과 사라짐은 사랑과 삶의 유한성을 암시합니다. 은발과 주름진 얼굴은 시간이 지나면서도 변하지 않는 감정과 기억을 상징하며, 짧고 덧없는 키스는 삶의 덧없음 속에서도 필요한 위안으로 묘사됩니다. 사라져가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은 사랑이 남긴 흔적과 허기를 강조하며, 결국 사랑의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순간을 담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