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연대기

이채민 - 2023년 봄호

2025-02-19

 

 

 

 

슬픈 연대기

 

 

이채민

 

 

 

정갈한 식탁에서

거룩한 비극이

상냥하고 고요한 생각 속에서 익어간다

 

고해처럼 차려진 오늘의 메뉴

이별의 무늬가

측량할 수 없는 깊이로 웃는다

구멍 난 엄마의 양말처럼

먼 곳에서

내가 웃었고

더 먼 곳에서

너도 웃는다

 

엄마는 더 이상

우리를 키우지 않는다

구멍 난

양말도 상처도

그 무엇도 이제 꿰매지 않는다

 

지상과 지하로 흐르는 맛없는 비극을

엄마 없이

홀로 받아먹고 있다

고해처럼 번지는 슬픔과

빨간 웃음을 삼키고 있다

 

꽃으로 돌아서고

꽃으로 사라지는

빛바랜

존재의 존재들이

 

 

 

 

 

 

 

이채민 시인

2004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오답으로 출렁이는 저 무성함』『까마득한 연인들』 등이 있음. 미네르바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 서정주문학상 수상. 

 

 

 

 

AI 해설

 

 

이 시는 가족의 상실과 그로 인한 깊은 슬픔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정갈한 식탁과 고해처럼 차려진 메뉴는 겉으로는 단정하지만, 내면에 숨겨진 비극과 고통을 상징합니다. '구멍 난 엄마의 양말'은 돌봄과 따뜻함의 부재를 상징하며, 더 이상 상처를 꿰매지 않는 엄마는 부재하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존재로 그려집니다. 남겨진 화자는 슬픔과 고통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을 겪으며, 이별의 무늬가 깊게 새겨진 삶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결국, 존재는 꽃처럼 피었다가 사라지는 덧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