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등대 

박수현 - 2023년 봄호

2025-02-19

 

 

 

 

백년 등대 

 

 

박수현

 

 

 

학 같기도, 구름 같기도 한 새 등대에서

몇 발짝 떨어진 옆자리, 옛 등대*가

‘출입 금지’ 팻말을 목에 건 채 돌벅수처럼 서 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왜 기다리는지 알 리 없겠다

물결무늬 새긴 낡은 신발 끝으로

수평선이나 그리며 서 있다가

먼 뱃고동 소리 듣다 코끼리처럼 커져 버린 귀나 펄럭인다

-바다 건너 백년 만에 용설란이 하얀 꽃을 피워 올렸대

-백년 동안의 고독처럼 외로웠던

<백년 찻집> 여주인이 지난밤 달빛을 벗어놓고 사라져 버렸대

 

백년 동안 기억들이 쌓이고 하염없이 생각들이 내려앉다 흐려지고 물의 둥근 호흡들은 등대의 나선형 철계단을 감아오르는 푸른 담쟁이를 지나 새털구름을 지나 다시 허공에서 윤슬처럼 반짝이다 흔들린다

 

그때 천 년 전쯤, 어쩌면 백 년 후의 고깃배들이

회창회창 풍등처럼 수런대며 밀려오고

아주 잠깐, 초들물 밀려올 때처럼

청춘을 다 탕진해버린 해안선도 쭉 허리를 펼친다

그 너머, 오래 무소식인 사람이 보낸 짧은 기별 같은

초저녁별 하나 떠오른다

 

 

*목포에 있는 등대

 

 

 

 

 

 

 

박수현 시인

2003년 《시안》 등단. 시집『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샌드페인팅』등이 있음. 제4회 동천문학상 수상

 

 

 

 

AI 해설

 

 

이 시는 등대를 매개로 시간의 흐름과 외로움, 기다림의 의미를 담아냅니다. 새 등대와 ‘출입 금지’ 팻말을 단 옛 등대는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통해 세월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잊혀진 존재를 상징합니다. 백년 만에 피는 용설란과 <백년 찻집> 여주인의 이야기는 오랜 기다림과 고독을 은유하며, 등대를 둘러싼 자연의 이미지들은 그 흐르는 시간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고깃배와 초저녁별의 등장은 오랜 기다림 끝에 다가오는 희미한 희망과 소통을 상징하며, 시 전체에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