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

정용기 - 2023년 봄호

2025-02-19

 

 

 

 

연리지

 

 

정용기

 

 

 

그대는 푸른 물을 머금은 물푸레나무

나는 뜨거운 불을 품은 동백나무

어쩌면 그대를 스무 살쯤에 스쳤을지 몰라요

어쩌면 그대를 서른 살쯤에 만났을지 몰라요

그래서 동쪽바다로 가는 열차를 탔겠지요

 

높고 긴 산맥을 넘어가기 위해

일 년을, 십년을, 아니 백년을 지나가야 하는

기나긴 터널의 어둠을 통과할 때,

내가 그대 허리에 슬쩍 팔을 두르고

그대가 내 어깨에 다소곳이 머리를 기대어 온다면,

푸른 물이 나에게로 흘러와 등뼈를 적시고

뜨거운 불이 그대에게 넘어가 가슴을 어루만지겠지요

 

그대의 아픈 옹이 앞에 내가 골똘해지고

나의 우여곡절을 그대가 다독거려 주면서

일 년이, 십년이, 아니 백년이 흐르고 나면

맑은 시냇물에 우리 같이 발을 담글 수 있겠지요

 

때때로 그 시냇물 따라 바다로 흘러가서

그대를 업고 길게 발자국 남기며 백사장을 걷다가

만조의 물너울이 마음속으로 둥글게 차오르면

산그림자 내리는 마을로 돌아와

팔베개로 밤을 보낼 수 있겠지요

 

 

 

 

 

 

 

정용기 시인

2001년 《심상》 등단. 시집 『하현달을 보다』『도화역과 도원역 사이』『어쨌거나 다음 생에는』『주점 타클라마칸』이 있음.

 

 

 

 

 

AI 해설

 

 

이 시는 두 존재의 깊은 인연과 사랑을 연리지에 비유하여 그립니다. 서로 다른 물푸레나무와 동백나무는 각자의 성격과 삶을 상징하지만, 긴 시간과 여정을 함께하며 점차 하나로 엮여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기나긴 터널을 함께 통과하는 장면은 인생의 어려움과 고난을 함께 이겨내는 모습을 담고 있으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사랑은 더욱 깊어집니다. 시냇물과 바다로 이어지는 이미지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애정을 상징하며, 결국 함께하는 평온한 일상을 꿈꾸는 따뜻한 소망으로 시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