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검림刀山劍林

박완호 - 2023년 봄호

2025-02-25

 

 

 

 

도산검림刀山劍林

 

 

박완호

 

 

 

내 언어의 행간 사이에 숨어 있던

자객들은 다 어디로 떠나갔을까?

살짝 닿기만 해도

뻘겋게 핏물이 배어날 것 같은

날 선 말들, 한 번 칼질로

두꺼운 어둠을 동강 내려던

정신은 표적을 놓쳐버리고

지금은 어디쯤 고꾸라져 있나?

허무를 꿰뚫으려는 시의 언어에는

치명적인 독 하나쯤은 묻어나야 하는데

나는 무슨 말의 독을 차고

세상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려는가?

떨어져 나간 자객들을 다시 불러들이려면

언어의 행간마다 독 오른 칼날을 꽂아두고

서슬 푸른 눈빛을 안으로 갈무리해 가며

표적을 노리는 자객의 숨결 같은

적막 가운데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

비수를 감춘 자객이 숨기 좋은

시인의 정신은

어디나 도산검림刀山劍林이다.

 

 

 

 

 

 

 

박완호 시인

1991년 《동서문학》 등단. 시집 『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처럼』『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너무 많은 당신』『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등이 있음. 김춘수시문학상 등 수상.

 

 

 

 

AI 해설

 

 

이 시는 시인의 언어 속에 감춰졌던 강렬한 감정과 독설이 과거에 얼마나 치명적인 힘을 발휘했는지를 회상한다. 한때 단 한 번의 칼질로 어둠을 갈랐던 그 날카로운 말들이 지금은 어딘가 흩어져 버린 듯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시인은 허무를 꿰뚫을 만큼의 치명적인 독, 즉 깊은 의미와 감정이 담긴 언어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잃어버린 자객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날카로운 의지와 독한 표현을 일깨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결국, 시인은 시인의 정신이란 마치 숨겨진 비수처럼 언제나 존재하며, 그 강렬한 힘으로 세상을 가로지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