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블루스
손인호 - 2023년 여름호
2025-02-26
영종도 블루스
손인호
삼월에 갔다가 사월에 돌아왔어
기특하게도 윤달이었어
섬에서 섬으로 돌아 돌아와 도로 아미타불
동백꽃 찔레꽃 자목련 냉이꽃 배꽃 수양벚꽃 민들레 유채꽃 진달래 꽃다지 귤꽃은 아직
윤달에는 뭘 했어도 안 했다고 한다지
아리아처럼 지선상의 미끄러지는 활주로 비행기처럼
이륙하는 것인지 착륙하는 것인지
있지도 않으면서 떠나지도 않으면서*
갇힌 것도 아니면서 풀려난 것도 아니면서
아슬한 기억의 평형수 코발트로 빛나는 별들 별빛들
이유를 잘 모르겠어 진짜로 싫은 건
좋은 것도 마찬가지 뭘 잘못했는지도
잠자코 돌아선 네 뒷모습이
오체투지로 절하는 것만 같아서
어쩌면 마지막 같았던 이번 생이
윤달에 피었다 지는 헛꽃도 같았어
티미하게 푸러진 평형추 매달려 있고
인천교 아래엔 속리유령거미 집 떠난 흔적
기어코 승천했다는 기별 전해오면
살아도 안 산 것처럼 상처도 없던 것처럼
흘러 세월도 흘려 홀려서 밀물인지 썰물인지
당신을 잊겠으니 내 사랑도 고스란히 잊어주세요
그것이 우리를 부활시킬지도 모를지니
섬에서 섬을 그리워하니
삶에서 삶이 지워지는 아이러니, 이제
허무를 잊지 않고 허무를 터득하려 하네
이번 생에 배울 수 있다면
대신 사과하는 일 같은 것, 다만
한 모금 친절 같은 것 같은 것
일 거야 그럴 거야 그럴 거야 일 거야 아닐 거야 일 거야 그럴 수 없을 거야 일 거야
* 제주도 백현일의 노래 <타령> 첫 소절
손인호 시인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에 단장 「해인사 싸리비」가 시로 소개되었다. 올해 봄 시집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를 글상걸상에서 펴냈고, 인천공항물류센터에서 비정규직 화물하역원으로 일하며 살고 있다.
AI 해설
「영종도 블루스」는 섬과 섬을 떠도는 여정을 통해 존재의 모호함과 허무를 탐색하는 시다. 윤달이라는 비현실적인 시간 속에서, 떠남과 머묾, 이륙과 착륙 사이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자아를 그린다. 기억과 감정의 무게는 평형을 잃고,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조차 흐릿해진다. 섬이 섬을 그리워하듯, 삶 속에서 자신을 지우려는 아이러니가 드러나며, 허무 속에서도 연민과 사과 같은 작은 친절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시는 끝없는 불확실성과 부유하는 감정의 흐름을 담담히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