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고은진주 - 2023년 여름호

2025-02-26

 

 

 

 

누룽지

 

 

고은진주

 

 

 

불의 껍질이다

 

하얀 밥은 불의 껍질을 벗겨낸 식사

뜨거운 불기로 촘촘하게 엮은

곡식과 끓는 물 사이의 짧은 화석이다

 

어쩔 줄 몰라 했던, 밥의 껍질이다

 

껍질을 벗겨야 먹을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속을 먼저 먹고 그 다음에 껍질을 벗긴다

 

덜 익은 밥알에게 배려한 시간이

고슬고슬 들어 있다

 

시장기의 끝

보글보글 소리를 밀어 올리면서

손바닥 벗어나려고 했던

찬밥신세까지 끌어안게 된 것은

불의 다그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팝나무 아래

무수한 밥알이 떨어진다

 

노을이 노릇노릇하게 눌러 붙어있다

 

 

 

 

 

 

 

고은진주 시인

201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인수첩 등단. 시집 『아슬하게 맹목적인 나날』이 있음.

 

 

 

 

AI 해설

 

 

「누룽지」는 밥이 불에 눌어붙어 만들어지는 누룽지를 통해 삶의 흔적과 시간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불의 다그침 속에서 밥알이 눌어붙어 생긴 누룽지는 곡식과 불, 시간의 상호작용으로 탄생한 짧은 화석처럼 묘사된다. 시는 속을 먼저 먹고 남은 껍질을 나중에 먹는 누룽지의 독특한 존재 방식을 통해, 버려질 뻔한 것들이 새로운 의미를 얻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누룽지에 담긴 노을빛과 이팝나무 아래 떨어진 밥알의 이미지를 통해, 사소한 것들 속에도 따뜻한 온기와 삶의 의미가 스며 있음을 담담히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