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여성민 - 2023년 여름호

2025-02-26

 

 

 

 

화양연화

 

 

여성민  

 

 

 

잘 몰랐지만 사랑은 어릴 적 시계 보는 법을 배우던 일과 다르지 않다

 

시계에도 공기가 있고

바늘 밑에 그림자가 진다 실처럼

 

그 애는 알몸이었고 그 애 바늘과 내 바늘이 잠시 일치했었다 타인을 안아도 실처럼 우린 가늘고 사랑은 바늘 하나의 그림자

사랑해 하고 말할 때 공기 중으로 날아간다

 

산장에서 걸어 내려오며 벌목공을 봤다

저 소리 들려?

목재를 반듯하게 자를 줄 아는 사람과 자고 싶어 그리고 독재자처럼 그 애가 큰소리로 웃었다 느닷없이 부러지며

 

사랑은 해삼처럼 와

 

빈터에 빛이 내려앉고 미지근한 공기가 팽만해서 숲으로 난 길은 그 애의 알몸 같고 나무를 벤 숲은 공기가 가득한 마음 같은데

 

그 애가 검은 실처럼 아름다웠다

 

좋은 사람 만나면 쉽게 사랑에 빠졌고 사랑을 나누기 전 나는 여전히 시계를 푼다 귀에 대면

 

해삼 깨무는 소리 들린다

 

 

 

 

 

 

 

여성민 시인

2010년 <세계의 문학> 소설,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에로틱한 찰리』 소설 『부드러움과 해변의 신』, 시소설 『뜻밖의 의지』(공저) 등이 있음.

 

 

 

 

AI 해설

 

 

「화양연화」는 사랑의 순간들을 시계 바늘과 공기, 실과 같은 섬세한 이미지로 풀어낸 시다. 사랑은 마치 어린 시절 시계 보는 법을 배우듯 어설프고도 순수한 과정이며, 순간적으로 일치했다가 사라지는 바늘 그림자처럼 덧없고 연약하다. 사랑의 욕망과 순수함, 그 사이의 긴장감을 벌목공과 숲의 이미지로 표현하며, 관계 속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기를 그려낸다. 시계 소리에 비유된 해삼 깨무는 소리는 사랑의 본능적인 면모와 사랑 뒤에 남는 공허함을 상징하며, 사랑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동시에 담아낸다.